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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식민지 戶籍의 주소 양식은 戶의 순번에서 垈地의 지번으로 변화한다. 일부 호구만 선택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고정된 주소로 모든 주민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나아가 개개인의 ‘出身’을 本籍地라는 지리적 연원에서만이 아니라 가족의 혈연적 연원에서 파악하는 호적 등재방식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주민의 빈번한 거주이동은 소위 ‘동성촌락’이라는 혈연적 지역공동체의 형성을 방해하는 요소였다.
거주이동은 대지를 소유하지 못한 가족들 가운데 높은 비율로 일어났다. 거주의 불안정성이 그 원인일 것이다. 이들은 주로 여러 군소 성씨들이지만,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성씨의 가족들도 포함된다. 거주의 안정성을 보장할 정도로 同姓이라는 혈연적 연대가 강고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넓은 대지를 소유하는 가족 가운데에서도 거주이동이 발생했다. 사회경제적 안정성을 갖추어도 정착하지 않는 부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군소 성씨의 가족 가운데 나타난다. 다수파 성씨인 경우는 世居地에 근거를 두고 도시에서 활동하려는 가족인 반면, 이들 군소 성씨의 거주이동은 다수파 성씨들의 배타성이 그 하나의 원인이 아닐까 여겨진다.
‘동성촌락’에는 다수파 성씨 가족들이 부계혈연적인 결집을 강조하며 마을의 주도적 세력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주민의 계층성과 혈연성의 역학관계가 다양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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