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
연구/단체명을 입력해주세요. |
|
|
|
|
|
* 주제를 선택하시면 검색 상세로 이동합니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는 한강, 낙동강을 비롯한 주요 하천을 대상으로 하천개수사업이라는 것을 시행했다. 이글은 그 중에서도 낙동강을 대상으로 시행된 개수공사를 분석한 것으로서, 필자는 이를 통해 낙동강개수사업의 배경과 내용, 그리고 조선인들의 반응 혹은 대응을 소개하고자 했다.
낙동강 하류 지역은 예부터 상습 침수 구역이었고, 하천 연안의 땅은 침수로 인해 농사가 어려운 ‘잡종지’로서 가치가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로 건너온 일본인 중에는 이런 땅을 헐값에 사들인 후 수리조합을 만들어 방수 및 배수시설을 갖추는 사람이 많았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땅을 ‘옥답’으로 바꾸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지역 수리조합의 토지개량사업은 연이은 홍수로 난관에 부딪혔다. 조선총독부는 이처럼 어려움을 겼던 수리조합을 지원기 위해 당국이 주도해 파괴된 제방을 보강하고 배수 및 방수 시설을 보완하고자 낙동강개수사업을 시작했다. 이것이 낙동강개수사업의 내용이었던 것이다.
요컨대 낙동강개수사업은 낙동강 하류 지역에 농장을 갖고 있던 일본인들이상습 수해를 받지 않도록 돕기 위해 기획된 것이었다. 그런데 낙동강개수사업으로 빈발하던 수해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으로 보았던 조선인 언론이나 지역 주민들은 이 사업의 공사 구역을 보다 확대해달라고 청원하는 등 기대를 걸었다. 한편 이 사업이 실행됨에 따라 예기치 못한 피해를 입게 된 사람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물길이 바뀌어 수해에 노출되기도 했으며, 또 어떤 지역 사람들은 조선총독부의 공사 비용 전가 정책으로 큰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나 지역 주민과 언론들은 이 사업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았다. 식민지 현실아래에서는 ‘가진 자’를 위해 실시되는 사업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보다 그 사업으로 조금이라도 수해가 줄어들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더 컸던 것이다.
In the 1920s,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 implemented a river renovation project targeting major rivers including the Han River and Nakdong River. This article analyzed the renovation work conducted on the Nakdong River. I tried to introduce the background and contents of the Nakdong River renovation project, and the response or response of the Koreans in this article.
The lower part of the Nakdong River has been a habitually flooded area since ancient times, and the land along the river coast was of no value-land where farming was difficult due to flooding. Among the Japanese who came to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there were many people who bought such land at a bargain price and formed irrigation unions to have water and drainage facilities.
The government-general of Joseon started the Nakdong River renovation project to reinforce the destroyed embankment and supplement the drainage and waterproofing facilities, led by the authorities to support the unions that had been in such difficulties.
The Korean media and local residents, who believed that the frequent flood damage caused by the Nakdong River Renovation Project would be reduced to some extent, raised expectations, including petitioning for further expansion of the project's construction area. Meanwhile, many people suffered unexpected damage as this project was implemented. Some people were exposed to flood damage due to the change of the waterway, while others in the region were burdened by the government-general's policy of transferring construction costs.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
1 | 고나은, 「1920~1930년대 낙동강 하류부의 일천식하천개수공사와 지역민의 대응」, 『항도부산』 40, 2020. | 미소장 |
2 | 김태웅, 「1925년 일제의 경성부 이촌동 수해대책과 도시개발 구상」, 『역사연구』 33, 2017. | 미소장 |
3 | 도리우미 유타카, 「일제하 수리조합사업과 일본인 토목청부업자」, 『한국문화』 68, 2014. | 미소장 |
4 | 이금도․서치상, 「일제강점기 건설청부업단체의 담합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49, 2006 | 미소장 |
5 | 정승진, 「실패한 식민지 ‘개발’ 프로젝트- 益山 黃登堤의 廢堤化 사례」, 『한국사학보』59, 2015. | 미소장 |
6 | 최병택, 「'경성토목담합' 사건을 통해 본 일제하 토목 청부업계의 담합 관행」, 『역사연구』 28, 2015. | 미소장 |
7 | 최병택, 「일제 강점기 하천개수사업의 전개와 그 문제점」, 『인문논총』 제75권 제2호, 2018. | 미소장 |
8 | 최병택, 「일제 강점기 사방사업의 전개와 그 문제점」, 『역사교육』 150, 2019. | 미소장 |
9 | 허수열, 「일제강점기 하천개수의 식민지적 성격-만경강 개수를 중심으로-」 『학술원논문집(인문·사회과학편)』 제51집 2호, 2012. | 미소장 |
10 | 현신규, 「인류문화 발전에 있어서 삼림의 역할」, 『삼림과학연구보고』 5, 1985. | 미소장 |
11 | 홍금수, 「밀양강 하류의 저습지 개간」, 『대한지리학회지』 52-6, 2017. | 미소장 |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전화번호 | ※ '-' 없이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세요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정기간행물실(524호) / 서가번호: 대학01
2021년 이전 정기간행물은 온라인 신청(원문 구축 자료는 원문 이용)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