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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國事를 논의하고 실행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를 가진 사람은 朝士였다. 儒生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고 良人 이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의 대상이었다. 上疏는 이런 상황에서 유생이 국가의 公務大事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공식적 통로였다. 학생이면서 예비관료인 유생은 在野여론의 형성과 통행에 영향을 끼치는 존재였고, 그것은 朝廷여론에도 일정하게 작용하는 것이었다. 그중에서 조선전기 유생언론은 주로 16세기 사림공론을 중심으로 언급되었고, 그중에서도 15세기 유생언론은 제한적이고 부수적인 것으로 다루어져 왔다. 그러나 16세기 士林의 시대가 15세기 初期士林의 생성과 결집으로 도래했다는 점은 보다 강조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초기사림의 대오는 돌출된 몇명 ‘선각자·순교자적 존재’뿐만 아니라, 이들과 共鳴한 동시대 유생들의 에너지가 함께 작동하여 형성된 것이다. 필자는 15세기 유생상소가 바로 그와 같은 에너지의 생성·작동과 관련되어 있음에 주목하고 조선왕조실록에 수록된 15세기 유생상소를 고찰하였다.
15세기 유생상소는 應旨上疏와 闢佛上疏로 대별된다. 유생의 응지상소에 대한 왕과 기성권력의 반응은 긴장과 징벌이라는 말로 상징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이 새로운 비평자들에 대한 반응은 첫째, 유생의 응지상소 행위 자체를 크고 작은 법률 위반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둘째, 윤리 시비를 일으켜, 유생들을 사회화가 덜 되었거나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 존재로 낙인찍는 것이다. 셋째, 상소에 있는 부분적인 사실 오류를 발굴, 논점을 전환하여 유생상소가 제기한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표현을 문제 삼거나, 관련 없는 사실을 가져오며, 유생이 國事와 大體, 왕실의 일을 모른다는 식의 대응이 여기에 포함된다. 한편 유생이 응지상소에서 다룬 내용의 기원과 경로는 첫째, 유생이 자기의 견문과 경험으로 알게 된 조정 밖의 백성의 현실과 고통이다. 둘째, 공부의 과정에서 배운 것으로, 정치의 마땅한 도리와 군신의 명분 같은 것들이다. 셋째, 師友 사이에서 들은 것으로 조정과 재야를 포함한 여론, 傳聞, 소문, 풍문, 왜곡/잘못된 정보 같은 것들이다. 특히 師友에게서 들었다는 내용은 집단의 생각과 의견이 유생상소에 연루되었을 가능성을 내포한다. 이는 ‘王法이 용서하지 않는’ 朋黨・朋比의 重罪로 확전될 여지를 가진 것이었다.
다음, 벽불언론은 왕의 불교 애호와 이를 위한 자의적 왕권 행사에 대한 신하들의 공동전선이었다. 유생언론은 이같은 조정의 벽불언론에 초대받거나 스스로 합세했고, 조정공론은 이런 유생언론을 포섭함으로써 一國公論으로서 대오를 갖추는 효과를 얻었다. 이런 기성세대의 반응은 포섭과 환대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때에 조정관료들이 유생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논리는 대략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유생이 대체를 모르는 狂童이라는 것이다. 잘 알지 못해서 겁 없이 상소했으니 용서하라며 유생을 보호하는 논리이다. 둘째, 성종을 칭송하여 聖明한 군주임을 유생들이 믿었기 때문에 숨김없이 말했으니 용서하라는 논리이다. 마지막으로 유생들도 나라일에 대하여 말할 만한 자격이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틀리지 않았다는 논리이다. 이는 응지상소에서 유생언론에 대응하는 태도와 현격하게 다르다. 이런 환대 속에서 성종대 유생들은 스스로를 대간과 같은 ‘군주의 耳目’이라고 표명했다. 성종 치세 후반기, 세종대 벽불상소로부터 6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15세기 유생들은 상소를 통해 보다 고양된 집단정신을 드러냈다. 즉 ‘우리가 지키는 것은 道’이며 따라서 도가 아니라면 대신은 물론이고 군주의 잘못도 지적할 수 있고 도가 없는 군주라면 떠나갈 수 있다는 가치관과 논리를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품계와 직분이 명확한 관료체제로 운영되는 王政에서 ‘우리가 섬기는 것은 道’라고 명확·용감하게 말하는 道學 세대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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