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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서』 백제전에 수록된 ‘갱위강국(更爲强國)’ 표문은 단편적인 문장만 전하지만, 강국으로서의 백제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간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다만 ‘累破句驪 今始與通好’ 부분의 통호 상대국이 양인지 고구려인지, 그리고 ‘而百濟更爲强國’ 부분을 표문 문장으로 볼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상반된 입장이 제기되어왔다. 그런데 기존에는 표문이 군신관계와 관련되는 문서라는 점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이 점에 유의하면서 표문을 검토한 결과 통호 상대국은 고구려이며, ‘而百濟更爲强國’은 표문에 서술된 내용을 「양직공도」 내지 『양서』 찬자가 각색하여 서술한 것으로 보았다.
표문의 문장, 즉 ‘累破句驪 今始與通好’는 백제가 고구려를 격파했지만 결국 통호하여 동방 지역에 안정을 가져왔음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표문은 「양직공도」 ‘방소국(旁小國)’ 기사의 내용도 포함한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표문의 내용은 무령왕 즉위 이후 백제의 중흥과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한 것이었다. 동성왕대까지를 고구려에 의해 쇠락한 시기로 전제하고, 무령왕 즉위 이후를 ‘累破句驪 今始與通好’를 달성하고 방소국 위에 군림 하는 중흥의 시기로 서술한 것이다. 표문이 양을 의식한 문서임을 고려한다면, 백제가 양 중심 국제질서 속에서 동방의 최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여 지역질서에 안정을 가져왔음을 주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표문을 접한 양 무제는 무령왕에게 고구려와 동일한 장군호, 영동장군(寧東將軍)를 중복 수여하되 대장군으로 높여주었다. 이는 백제왕이 역사상 처음 고구려왕보다 높은 등급의 장군호를 받은 사례이다. 특히 양 무제가 520년 고구려왕에게 영동장군을 수여했음에도 이듬해 무령왕에게 동일한 장군호를 주고, 나아가 대장군으로 높인 사실은 표문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표문 속 고구려를 압도한 동방의 강국 백제의 면모와 이를 통한 성과가 일치하는 것이다. 영동대장군으로 대변되는 성과는 표문을 통한 무령왕의 강국 선전이 효과를 거두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무령왕은 ‘영동대장군·백제왕’의 위상을 대내외에 선전할 수 있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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