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
연구/단체명을 입력해주세요. |
|
|
|
|
|
* 주제를 선택하시면 검색 상세로 이동합니다.
김돈희는 근대기에 중추적 역할을 했던 서예가이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가 시작된 1922년부터 서부가 존속된 1931년까지 줄곧 심사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조선미술전람회 서부 심사원으로는 유일하게 1회부터 10회까지 전 심사에 참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조선총독부 중추원 촉탁직을 유지하며 권부의 그늘에 있었던 것이 큰 배경이 되었다.
지금까지 김돈희가 1910년 국권피탈 당시 체결된 〈한일병합조약〉 문서를 썼다고 전해져 그의 친일 전력으로 가장 먼저 거론되어 왔다. 그의 친일 전력 시비로 인해 근대기 서단의 대표적 서예가로서 김돈희의 면모는 그동안 거의 묻혀 왔다. 본고에서는 김돈희가 조약문을 썼다는 그간의 전언이 사실인지 살펴보았고, 나아가 근대적 미술 개념이 도입된 전람회에서의 그의 영향을 조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 결과 김돈희가 조약문을 직접 필사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다. 조약문과 김돈희의 필적을 대조해보았지만 김돈희가 조약문을 썼다는 근거 역시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조약문 체결 당시 김돈희와 함께 대한제국 내각 문서과에서 근무했던 5인의 필적을 조사해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김돈희는 조선미술전람회 심사를 통해 김돈희 계파를 형성하였다. 특히 북송 황정견에 바탕을 둔 그의 서풍은 조선미전에 입선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되며 권력으로 작용하였다. 그 결과 김진민과 손재형 등 국내의 전문서예가는 물론, 조선총독부와 재조선 일본인 고위층 인사였던 葛城末治와 宇野宗一 등이 김돈희 계열로 두각을 나타내며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들의 세력화는 결국 서단의 획일화를 조장하는 동시에 작가들의 창작의지를 차단하며 서풍의 다양성을 막아섰고, ‘서’를 전통이라는 견고한 틀에 머물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번호 | 참고문헌 |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
---|---|---|
1 | 內閣印刷局 編, 『內閣職員錄』, 內閣印刷局, 1908. | 미소장 |
2 | 조선총독부 편, 『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경성: 조선총독부, 1920. | 미소장 |
3 | 중추원조사자료 「第五節 朝鮮語辭典ノ編纂」, 『朝鮮舊慣及制度調査沿革ノ調査』 第2冊, 朝鮮總督府中樞院.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itemId=ju) | 미소장 |
4 | 「韓日倂合條約」(奎23018·23019), 「覺書」(奎23159),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미소장 |
5 | 『경성일보』 | 미소장 |
6 | 『대한매일신보』 | 미소장 |
7 | 『매일신보』 | 미소장 |
8 | 『조선신문』 | 미소장 |
9 | 『조선일보』 | 미소장 |
10 | 『황성신문』. | 미소장 |
11 | 김은호, 『書畵百年』, 중앙일보사, 1981. | 미소장 |
12 | 장우성, 『畵脈人脈』, 중앙일보사, 1982. | 미소장 |
13 |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편, 『근묵』,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9. | 미소장 |
14 | 한국미술연구소편, 『조선미술전람회 기사자료집』, 한국미술연구소, 2000. | 미소장 |
15 | 홍선표, 『한국 근대미술사』, 시공사, 2009. | 미소장 |
16 | 김원익, 「素筌 孫在馨 硏究」, 전남대학교 미술교육학과 석사학위논문, 1993. | 미소장 |
17 | 김윤경, 「惺堂 金敦熙의 書藝硏究」, 원광대학교 미술학과 석사학위논문, 1998. | 미소장 |
18 | 김정선, 「조선미술전람회 서부(書部)의 제도적 고찰」, 『한국근현대미술사학』 41,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21. | 미소장 |
19 | 이가라시 고이치(五十嵐公一)(저), 이중희(역), 「조선미술전람회 창설과 書畵」, 『한국근현대미술사학』 1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4, 347쪽. | 미소장 |
20 | 이중희, 「조선미전 설립과 그 결과」, 『한국근현대미술사학』 15,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5. | 미소장 |
21 | 윤대원, 「일제가 불법, 조작한 병합조약」, 『100년 전의 기억, 대한제국』, 국립고궁박물관, 2010. | 미소장 |
22 | 이태진·이상찬, 『조약으로 본 한국 병합 ‒ 불법성의 증거들』, 동북아역사재단, 2010. | 미소장 |
23 | 이영학, 「대한제국시기의 기록관리」, 『기록학연구』 19, 한국기록학회, 2009. | 미소장 |
24 | 윤범모, 「일제 강점하의 서예와 金瑱珉」, 『동악미술사학』 9, 동악미술사학회, 2008. | 미소장 |
25 | 전상모, 「전람회를 통해 본 한국 근·현대의 서예」, 『동양예술』 46, 한국동양예술학회, 2020. | 미소장 |
26 | 정병호, 「일본근대문학, 예술논쟁연구(1) ‒ 『서예는 미술이 아니다』 논쟁과 근대적 예술개념의탄생」, 『일본학보』 55, 한국일본학회, 2003. | 미소장 |
27 | 高橋三七 編, 『事業と鄕人』 제1집, 京城: 實業タイムス社: 大陸硏究社, 1939. | 미소장 |
28 | 藤原楚水, 『圖解書道史』 제4권, 東京: 省心書房, 1975. | 미소장 |
29 | 比田井鴻 編, 『朝鮮書道菁華』, 東京: 書學院後援會, 1931. | 미소장 |
30 | 芸術新聞社 編, 『近代日本の書』, 東京: 芸術新聞社, 1984. | 미소장 |
31 | 奥山錦洞 著, 『日本書道史』, 東京: 啓文社書店, 1927. | 미소장 |
32 | 井原雲涯 編, 『鳴鶴先生叢話』, 東京: 昭文堂, 1925. | 미소장 |
33 | 朝鮮實業新聞社 編, 『(朝鮮在住內地人)實業家人名辭典』, 京城: 朝鮮實業新聞社, 1913. | 미소장 |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전화번호 | ※ '-' 없이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세요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정기간행물실(524호) / 서가번호: 대학01
2021년 이전 정기간행물은 온라인 신청(원문 구축 자료는 원문 이용)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