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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남북한 고조선 연구 인식의 획기가 되는 1963~1965년의 ‘조중고고발굴대’의 전모를 새롭게 발간된 중국 측 담당자인 안지민의 일기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비록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공동조사였지만, 그 배경은 사회주의권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다. 1950년대 소련의 『세계통사』에서 고조선 부분이 누락된 것에 불만을 가진 북한은 중국과 연결하여 리지린을 북경대에 유학을 보냈다. 그리고 리지린은 새로운 고조선 연구로 만주를 고조선의 영역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도유호로 대표되는 북한 고고학계의 헤게모니를 빼앗았다.

조중고고발굴대는 이러한 북한 학계의 고조선 연구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실제 조사에서는 의도한 결과가 나올 수 없었다. 만주국의 피해를 겪은 중국 측의 강한 반발과 명청대의 문헌을 근거로 고조선을 찾으려는 문헌사학자 리지린의 오판 때문이었다. 1차년도에 고조선의 중심지를 찾는 데 실패한 리지린은 일선에서 물러나고 대신에 2차년도부터는 고고학자들이 일선에 등장했다. 김용간, 황기덕, 장주협 등의 소장고고학자들은 방향을 전환해서 대련지역의 강상과 누상 적석묘의 발굴을 통한 순장을 증명하고 노예제 사회로 규정시키는 쪽으로 연구를 전환했다. 이렇듯 조중고고발굴대는 역설적으로 리지린은 퇴장을 촉발했고 대신에 무리하게 패수와 왕검성을 찾고자 하는 문헌사 연구대신에 고조선 연구에서 고고학이 중심에 서는 기반이 되었다.

반면, 중국은 조중고고발굴대가 공식적으로 주은래가 공동조사를 승인하기 전인 1963년 봄부터 그 조사를 준비했다. 그 과정에서 만주국 시절 및 하얼빈의 러시아인들이 조사한 유적들의 현황을 파악했고, 이는 당시까지 부진했던 중국 동북지역의 고고학의 기틀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에, 실제 조사에서는 지속적으로 북한과 충돌을 일으켰고, 만주에 대한 중국의 민족주의적 감정 또한 여과 없이 드러났다. 이러한 갈등으로 3차년도는 사실상 파행적으로 이루어져서 대부분의 조사는 중단된 채 정가와자 유적에서만 간단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또한 고조선을 가장 대표하는 무덤인 정가와자 6512호와 하가점상층문화의 대형무덤인 남산근 101호묘 등은 정작 공동조사 보고서에서 누락된 것 또한 양국의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다.

중국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시행된 대형 국제 공동발굴이었던 조중고고발굴대는 파행으로 끝나고, 중국에서는 금기시되는 사건이 되었지만 그 의의는 매우 크다. 이 조사를 기점으로 중국의 조사는 변방을 다양한 사람의 역사가 아니라 한족 중심의 역사가 확산되는 것으로 보려는 관점으로 전환되었다. 중국의 공세적이며 팽창적인 역사관은 60년 전 북한과 고조선을 사이에 둔 분쟁의 반작용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조중고고발굴대에서 설정된 고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체계는 지금도 남한 고조선 연구의 주축을 이룬다. 이와 같이 북한과 중국 모두에게 조중고고발굴대는 결코 잊히거나 다툼으로 끝난 사소한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과 한국의 고대사 분쟁의 서막을 열었으며 고조선 연구의 방향을 규정한 거대한 암류(暗流)였다.

권호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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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목차
역사교과서에 서술된 한군현 내용의 변화과정 검토 = A review of change process of Han commanderies contents described in history textbooks 위가야 p. 7-60

중국 대학교 역사교재의 '조선시대 한중관계 및 문화' 서술과 인식 = Description and perception of 'Korea-China relations and culture in the Joseon Dynasty' in Chinese university history textbooks 구도영 p. 61-106

마공정(馬工程) 『중국근현대사강요』의 중국계 이주민 서술의 특징 : Characteristics of Chinese history education through Outline for Modern History of China in "Marxism project" : comparing with history education of Singapore and Taiwan / 싱가포르 및 대만 역사교육과의 비교 분석 김종호 p. 107-148

평양천도 후 고구려 묘장문자문화의 전이와 변용 = Acculturation and spread of Koguryo tomb character culture after move to Pyongyang 김근식 p. 151-176

고려 '동번(東蕃)' 여진문제의 국제환경과 정벌 추진세력의 구상 = The international situation of Jurchens problem and the policy direction of Goryeo 추명엽 p. 177-212

모용선비(慕容鮮卑)의 업성(鄴城)시대와 중화정통 = The Ye City era of Murong Xianbei and the Chinese orthodoxy 이춘호 p. 213-255

임진왜란기 대씨·태씨(조선시대 발해인)들의 활동 연구 : Study of the Joseon Balhae people(The Dae and Tae figures), and their actions during the war with the Japanese : examination of Nanjung Ilgi (『亂中日記』) and Honam Jeol'eui-rok(『湖南節義錄』) / 『난중일기(亂中日記)』와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을 중심으로 박순우 p. 257-286

식민지기 지방사 편찬을 통해 본 지방 구현과 식민주의 역사학의 전개 : The development of colonial historiography through the compilation of the local history during the colonial period : with emphasis on History of North Pyongan Province(1938) / 『평안북도사(平安北道史)』(1938)를 중심으로 정상우 p. 287-334

「정전협정」 이후 중국의 북한 경제지원과 북·중 관계, 1953~1957 = China's economic aid to North Korea and Sino-North Korea relations after The Korean Armistice Agreement, 1953~1957 이상민 p. 335-372

조중고고발굴대의 조사와 북한-중국의 고조선 역사 갈등 : North Korea-Chinese joint excavation in 1963~1965 years and the beginning of historical conflict over Gojoseon, based on newly published An Zhimin's Diary / 『안지민 일기』를 중심으로 강인욱 p. 373-416

참고문헌 (30건) :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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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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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安志敏, 2020, 『安志敏日记(全五册)』社会科学文献出版社. 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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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Белявский, А., Лазаревич, Л., Монгайт. А.(ред.), 1956, Всемирная история, том 2 в 10-ти томах.-М.:Госдарственн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политической литературы, г.-с.900. 미소장
7 Ларичев, В. Е., 2012, Путешествие археолога в Страну утренней свежести.-Новосибирск: Изд-во ИАЭТ СО РАН. -234 с. 미소장
8 강인욱, 2005, 「區系類型論과 중국 동북지방의 고고학-중국 동북지방 고고학에 대한이론적 접근」, 『한국고고학보』 56. 미소장
9 강인욱, 2014, 「VV 포노소프의 발해 상경성 발굴과 동아고고학회」, 『고구려발해연구』 48. 미소장
10 강인욱, 2015, 「북한 고조선 연구의 기원과 성립: 리지린의 고조선 연구와 조중고고발굴대-顧頡剛의 자료를 중심으로」, 『선사와 고대』 45. 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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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https://www.sohu.com/a/413532893_692521(검색일: 2023년 1월 10일) 미소장
30 http://www.kaogu.cn/html/cn/renyuanxinxiku/2013/1026/43970.html 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