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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淸香堂 李源의 선대 행적과 陜川李氏가 山淸에 정착한 과정, 영남의 양대 석학인 남명・퇴계와 함께 동갑내기 벗으로 도의교를 맺어 함께 학문을 강학하고 경상좌도와 경상우도의 학문적 균형을 가능케 한 청향당의 삶과 교유 관계를 살펴보고, 산청에 거주한 합천이씨에게 끼친 영향력을 고찰한 것이다.
淸香堂은 산청의 배양리에 입향한 陜川李氏 李季通의 손자이다. 부친 李承文에게 가르침을 받아 가학을 계승하였다. 1533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지만, 관직을 단념하고 고향에 청향당과 九思齋를 지어서 그 속에 은거하며 학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이원은 ‘항상 敬을 지키는 자세[庸敬]’로 자신을 수양하였는데, 항상 경을 지킨다면 求放心의 상황에 이르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또 ‘욕심을 적게 하는 것[寡慾]’이 마음을 수양하는 요체라고 생각하고, 학문을 할 때도 탐욕이 생기는 것을 경계하여 마음을 가라앉혀 완미하고 탐색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이러한 정신은 그의 아들 李光坤과 조카 李光友에게 이어졌다.
이원은 나이와 마음과 도와 덕이 같은 남명 조식과 나이와 처향이 같은 퇴계 이황과 가장 깊이 교유하였다. 특히 남명과는 처세관이 같아 知音으로 여겼으며, 관직 생활을 해온 퇴계에 대해서는 자신의 은거를[隱淪] 이해해 주는 벗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밖에도 이원이 교유한 인물은 남명과 퇴계의 문인과 종유인이 대부분이다. 이원에 대해 燕巖 朴趾源은 퇴계와 남명 두 사람과 교유하면서 완급을 조절하였다고 하였고, 俞漢雋은 이원은 남명이나 퇴계 어느 한쪽에 흡수되지 않고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구축했다고 평하였다.
이원은 이광곤과 이광우가 남명과 퇴계에게 수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일족인 日新堂 李天慶(1538-1610) 역시 구사재에서 공부하며 청향당의 학문에 영향을 받았다. 이후에도 산청의 합천이씨 문중에서는 德川書院의 院任으로 활동하거나 남명의 재전 제자에게 수학하는 인물들이 배출되었는데, 이를 통해 이들에게 미친 청향당의 영향력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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