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초록보기

오늘날 우리 사회의 화두는 ‘지역 균형발전’이다. 경제와 산업과 문화가 서울에 집중되고, 인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중앙과 지방 사이의 균형이 깨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지역 균형발전이다. “역사 속의 중앙과 지방-지역 균형발전의 방향을 역사에서 찾다-”라는 대주제는 지역 균형발전의 방향을 역사 속에서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핵심 주제어는 ‘중앙과 지방’, ‘지역 균형발전’, ‘역사 속에서의 탐색’이고, 기본 방향은 ‘집중’에서 ‘분산’이다.

역사 연구의 목적의 하나는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유일회성(唯一回性)이지만 유형(類型)은 반복하므로 역사에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역사적 사건의 유형은 시간의 원근을 가리지 않으므로 시간적으로 먼 고대사회에서도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지역 균형발전을 왜 이루어야 하며 그리고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역사 속에서 찾아보고자 할 때 적절한 사례가 신라 하대기(下代期) 사회의 모습이다.

삼국 통일 이후 승평기를 거치면서 신라 하대기 왕경에는 권력과 부와 문화 그리고 인구가 집중되었다. 지배층인 진골귀족들은 태평성대를 노래 부른 반면에 민초들은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야 하였다. 고가의 외래품이 넘쳐났지만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노비로 전락한 민들도 많았다. 하대기 왕경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가 전국 인구의 과반을 넘어 지방이 소멸될 위기를 맞은 것과 GDP도 서울과 수도권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시 과반을 넘어 빈부의 양극화(兩極化)를 초래한 양상과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신라는 5소경(小京)을 설치하여 수도의 기능을 분산시켰다. 지방에 거점도시를 육성하여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또 신라는 말기에 와서 각 지방에서 ‘호족(豪族)’이라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는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리하여 이른바 ‘지방분권’이라고 하는 자치의 시대가 열렸다. 이 과정에서 왕경에 집중된 권력과 경제와 문화가 지방으로 분산되었다. 거점도시의 육성과 지방분권이 바로 신라 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이었다.

오늘날 비대해진 서울과 서울이 안고 있는 빈부의 양극화와 지방 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 균형발전을 이루어야 한다. 지역 균형발전은 ‘지방분권’과 ‘거점도시’의 육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재정자립도를 갖춘 명실상부한 지방자치를 실시하고 또 각 지방에 거점도시를 육성하여 지방의 경제와 문화를 살려야 한다. 지방의 거점도시에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서울로의 인구 집중으로 말미암아 위기에 빠진 지방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 빈부의 양극화를 완화시켜 국민들이 인간적인 삶, 문화를 향유하는 삶, 여가를 즐기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 신라 하대기의 사회가 보여준 ‘지방분권’과 ‘거점도시 육성’이야말로 오늘날 우리가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인 것이다.

권호기사

권호기사 목록 테이블로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기사목차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목차
중앙과 지방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역사 속 '지역 균형발전' 방향성의 의미와 사례 = The meaning and examples of directions for the 'balanced regional development' in history away from the central-peripheral dichotomy 노중국 p. 1-38

신라 소경의 기능과 공간 구조 = Function and spatial structure of Sogyeong in Silla 박성현 p. 1-38

후백제 견훤왕의 왕권 신성화 방안검토 = Studies on the plan to deify King Gyeon Hwon of later Baekje : focused on authenticity, era name construction, great king title, progenitor myth deification : 정통성표방, 연호 건원, 대왕호칭, 시조신화 신성화를 중심으로 조법종 p. 1-39

영주 및 봉화지역 7세기 신라 불교조각의 조성배경 = A study on the background of context of Buddhist sculptures in Yeongju and Bonghwa area of 7th century Silla : focusing on the carved Buddha triad in Gaheung-dong, Yeongju :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을 중심으로 정성권 p. 1-40

신라 하대 6두품의 정치·사회적 위상과 그 변동 = The political and social status of the Six Dupum(六頭品) in the late period of Silla Dynasty and their changes 곽명준 p. 1-40

고려 태조대 유배형의 시원과 실상 = The origin and reality of the punishment of exile during the founder of Goryeo Dynasty 김명진 p. 1-30

경북지역 동양척식 이주농민의 정착과 존재양태 = The settlement and living aspects of the migrants of the Oriental Development Company in the North Kyȏngsang Province 김병수 p. 1-36

19세기 중반 20세기 초 러시아 전제정의 극동 식민화 재고 = Revisiting on the colonization of the Far East by the Russian autocracy from the middle of the nineteenth century to the early twentieth century 박원용 p. 1-36

유럽인의 눈으로 본 불교 = Buddhism in the eyes of Europeans : German Buddhist Georg Grimm’s understanding of Buddhism : 독일 불교도 게오르크 그림(Georg Grimm)의 불교이해 박용희 p. 1-34

참고문헌 (35건) : 자료제공( 네이버학술정보 )

참고문헌 목록에 대한 테이블로 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번호 참고문헌 국회도서관 소장유무
1 「삼국사기」 미소장
2 「삼국유사」 미소장
3 「고려사절요」 미소장
4 「신증동국여지승람」 미소장
5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미소장
6 「주서」 미소장
7 「삼국지」 미소장
8 「구당서」 미소장
9 「신당서」 미소장
10 「문경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 미소장
11 노중국, 「백제정치사」(서울: 일조각, 2018). 미소장
12 정구복, 노중국, 김태식, 신동하, 권덕여, 「개정증보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미소장
13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17(한국고대사학회, 2000). 미소장
14 井上秀雄, 「新羅史基礎硏究」(東京: 東出版, 1974). 미소장
15 권덕영, 「신라의 해양교류」, 「신라의 대외관계와 국제교류」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 연구총서 12(경상북도, 2016). 미소장
16 김광수, 「나말여초의 호족과 관반」, 「한국사연구」 23(한국사연구회, 1979). 미소장
17 김기흥, 「신라 ‘촌락문서’에 대한 신고찰」, 「한국사연구」 4(한국사연구회, 1989). 미소장
18 김주용, 「의림지2차조사성과-의림지 축성물과 호저퇴적층 산상연구를중심으로」, 「의림지의 탄생 배경과 그 역사성」 제천 의림지 국제학술회의 발표자료(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한국 제4기학회, 2009). 미소장
19 노태돈, 「삼국시대 ‘부’에 관한 연구―성립과 구조를 중심으로―」, 「한국사론」 2(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75). 미소장
20 노중국, 「국사학 연구의 현황과 과제-통일신라의 지방통치조직의 편제를 중심으로-」, 「한국학 논집」 17(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0). 미소장
21 민덕식, 「신라왕경의 도시설계와 운영에 관한 고찰」, 「백산학보」 33(백산학회, 1986). 미소장
22 박종기, 「고려시대 향·부곡의 변질과정―중앙집권화 과정과 관련하여―」, 「한국사론」 6(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80). 미소장
23 배재훈, 「입당 유학생 최승우와 후백제 견훤 정권」, 「신라사학보」 26(신라사학회, 2012). 미소장
24 서성호, 「고려시기 개경의 시장과 주거」, 「역사와 현실」 38(한국역사연구회, 2000). 미소장
25 서영일, 「신라 5통고」, 「백산학보」 52(백산학회, 1999). 미소장
26 우성훈, 「고려시대 개경 시장의 도시사적 위치에 관한 연구」, 「대한건축학회 논문집-계획계」 26-5(대한건축학회, 2010). 미소장
27 윤선태, 「정창원 소장 ‘신라촌락문서’의 작성연대」, 「진단학보」 80(진단학회, 1995). 미소장
28 이용범, 「삼국사기에 보이는 이슬람상인의 무역품」, 「이홍직박사회갑기념한국사학논총」(이홍직박사화갑기념사학논총간행위원회, 1969). 미소장
29 이우태, 「신라의 촌과 촌주」, 「한국사론」 7(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81). 미소장
30 이현숙, 「나말여초 최치원과 최언위」, 「고운학보」 2(고운학회, 2004). 미소장
31 임병태, 「신라 소경고」, 「역사학보」 35·36(역사학회, 1967). 미소장
32 전성현, 「해방 이후 ‘초기’ 지방자치제 하의 지방선거와 경남의 당선자」, 「역사 속의 중앙과 지방-지역 균형발전의 방향을 역사에서 찾다」 2022년 5개 역사학회 연합학술회의 발표자료집(대구사학회·부산경남사학회·호남사학회·호서사학회·전북사학회, 2022). 미소장
33 주보돈, 「신라 중고기 촌락구조에 대하여 Ⅰ-외위와 지방민 신분제-」, 「경북사학」 9(경북대학교 사학회, 1986). 미소장
34 최병헌, 「신라하대 선종구산파의 성립 -최치원의 사산비명을 중심으로-」. 「한국사연구」 7(한국사연구회, 1972). 미소장
35 武田幸男, 「新羅の村落支配-正倉院所藏文書の追記をめぐって」, 「朝鮮學報」 81(朝鮮 學會, 1977). 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