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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3월 일제의 조작과 지원으로 위만주국 ‘집권' 푸이가 다시 등극하여 중국 동북지역의 식민지화를 크게 가중시켰다. 중국 동북지역과 푸이 및 그 추종자들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관동군, 일본 정부 및 위만 당국의 공모로 푸이는 1935년 4월과 1940년 6월 두차례에 걸쳐 그 참모대신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했다. 방일 기간 동안 푸이는 일본 황실과 정부 그리고 국민들의 친절한 접대와 최고의 예우를 받음으로써, 오랫동안 꿈꿔온‘황제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 측은 두 차례 여정에서 푸이에게 신사, 신궁 등 신도 성격의 장소에 대한 참배 일정을 여러 차례 안배했고, 심지어 푸이에게 일본 천황을 상징하는 ‘御霊代’를 모셔가도록 제의해 위만 전역에 ‘유신의 도’사상을 홍보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푸이와 위만주국을 일본에 의존 및 종속 시키려고 했다. 따라서 일본측이 기획한 푸이의 방일은 사실상 대외적으로는 일본-위만주국 사이의 이른바 ‘친근한 이미지’를 분식하고, 내부적으로는 위만주국의 사상문화와 정신신앙에 대한 개조를 추진시킬 목적이었다. 푸이의 일본행은 푸이와 위만정권의 괴뢰화를 크게 가중시켰으며, 결국 위만을 일본과의 운명공동체로 엮이게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푸이 또한 자신의 괴뢰 성격에 대해 더 명확한 인식을 갖게 되었다.
1934年3月, 在日本帝国主义的操纵和扶植下, 伪满洲国“执政”溥仪再度登极, 中国东北的殖民化程度大大加深。为进一步强化对中国东北和溥仪及其仆从的控制, 在关东军、日本政府和伪满当局的合谋下, 溥仪携其幕僚分别于1935年4月和1940年6月, 上演出访日本的戏码。在日本游历期间, 溥仪接受了来自日本皇室、日本政府及民众的热情接待和最高礼遇, 餍足长久以来的“皇帝梦”。不过, 日方在两次行程上多次安排溥仪参拜神社、神宫等神道性质场所, 甚至授意溥仪“迎取”象征日本天皇的“御灵代”, 在伪满全境宣传“惟神之道”, 企图从精神上迫使溥仪及伪满洲国依赖和服从日本。因此, 日方策划的溥仪访日, 对外成功粉饰了日满之间所谓的“亲密形象”, 对内则推进对伪满思想文化和精神信仰的改造, 大大加深了溥仪及伪满政权傀儡化的程度, 最终将伪满完全捆绑在日本的战车之上。在此过程中, 溥仪对自身的傀儡性也有了更加清醒的认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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