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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祝願堂인 把溪寺 二應庵 자응전에 모셔졌던 〈치성광여래도〉와 〈소재보살도〉는 모두 11폭으로 구성된 불화였다. 치성광여래와 칠성을 여러 폭에 나누어 各部도상으로 조성한 까닭은 개인의 본명에 따라 消災祈禱를 하기 위함이다. 신앙의 목적이 단순한 기복신앙으로 세속화되는 과정에서 불화의 구성은 간략화되어 한 폭에 모든 도상이 그려진 모습으로 변화해 간다. 사찰에서 치성광여래와 칠성각부도와 같이 여러 폭으로 구성된 불화를 봉안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조선 후기전각의 구성이 축소되는 상황에서 多幅의 불화는 사찰의 형편에 맞지 않았던 사실도 점차 사라지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파계사 이응암 치성광여래도와 소재보살도는 시대를 따라 그 모습을 달리했던 불교 본명신앙의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 불화는 현존하는 치성광여래 도상 가운데 치성광여래 삼존이 각각의 화폭에 그려진 유일한 사례이면서 경상도 지역에 남겨진 작품 가운데 제작 시기가 가장 앞선다. 조선 후기 칠성각부도 구성의 전통을 보여주는 파계사 이응암 치성광여래도와 소재보살도는 북두칠성에게 연수를 기원하던 신앙의 목적에 따라 1717년 세자였던 영조가 어머니인 숙빈 최씨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효심으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사료적 가치가 크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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