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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인도인 미술가 마즈하르 알리 칸이 1846년에 제작한 세밀화 〈델리의 파노라마〉 속 도시 공간의 특징과 의미를 규명한 글이다. 본 논문은 마즈하르 알리 칸이 인도-페르시아 전통에 입각한 도시 및 건축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델리 시민들이 살아가는 동시대 도시 공간을 시각화했다고 주장한다. 19세기 전반 영국인들이 인도 각지의 건축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도인 미술가가 동원되었다. 기존 연구는 건축물을 단독으로 그리던 화가가 동시대 도시 공간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했다. 〈델리의 파노라마〉 속 이미지와 명문 분석을 통해 마즈하르 알리 칸이 델리의 역사적인 궤적을 드러내면서도, 주요 역사적, 상징적 건축물을 후경에 작게 배치하고 전경에 도시의 공공 공간, 기반 시설, 주거지를 강조함으로써 유적지가 아닌 ‘생활 공간’으로서의 도시를 시각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작품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나 제국의 상업적, 경제적 발전을 강조한 동시대 유럽과 인도의 다른 파노라마와 구별된다. 본 논문은 이러한 도시 공간의 특징이 19세기 전반 델리의 인도인 지식인들이 쓴 건축사 및 도시 관련 역사서, 특히 사이드 아흐메드 칸이 1847년에 저술한 『아사르 알 사나디드』와 내용적, 구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러한 저서들은 영국인 후원자나 독자를 의식해 저술되었음에도, 건축, 도시 공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총체적으로 인식한 인도-페르시아의 도시 서술 전통을 계승한다. 19세기 전반 델리의 유적에 높은 관심을 보인 영국인들은 우르두어나 페르시아어로 쓰인 현지 지식인들의 저술과 연구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델리의 파노라마〉를 영국에 대한 정치적 저항, 혹은 협력으로 해석하는 기존 연구의 틀에서 벗어나, 본 논문은 이 작품을 유럽과 인도-페르시아의 학문 전통이 공존하던 1840년대 델리의 지적인 맥락에 위치시킨다. 이를 통해 미술가가 자신이 속한 인도-페르시아의 지적 전통을 바탕으로, 당시 영국인들의 인도 건축 연구가 담아내지 못한 델리의 현실을 구현했다고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