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
연구/단체명을 입력해주세요. |
|
|
|
|
|
* 주제를 선택하시면 검색 상세로 이동합니다.
본 연구는 미시사적 연구 방법을 통해 조선조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대구 백불암가에서 발생한 종손권 분쟁 및 토지 소유권 분쟁을 사건의 전개에 따라 재구성한 것으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된 백불암가의 자료 가운데 관련 문서 90점을 선별하여 분석을 시도한 것이다. 문서는 所志가 27점, 通文이 16점, 牒呈이 3점, 關文·立案이 각 2점, 甘結·記事·完文·稟目이 각 1점, 기타 문서가 36점이다. 기타 문서의 경우 모두 1910년대 이후 발급된 토지소송과 관련된 근대기록물로 訴狀, 調書, 訴 訟證據書類, 判決文 등이다. 백불암가는 조선 후기 대구지역의 유력가문으로 1616년 최동집이 칠계에 입향한 이래 백불암 최흥원과 지헌 최효술이 학문을 완성하여 영남 퇴계학맥의 주류에 올랐다.
백불암의 부친인 최정석은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요절한 형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유서에 따라 종사를 물려받았다. 또한 백불암의 동생인 최흥점을 죽은 장남의 양자로 삼아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는데, 이 사건은 200여 년 뒤 종지 간에 발생한 종손권 분쟁의 발단이 되었다. 요절한 장남의 제사를 지낸 양자의 후손과 승종을 하여 불천위 제사를 지내 온 차남의 후손이 종손권 다툼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이들이 공동으로 모시는 조상의 묘가 소재한 종산의 토지 소유권 분쟁으로 이어지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전화번호 | ※ '-' 없이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세요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정기간행물실(524호) / 서가번호: 대학01
2021년 이전 정기간행물은 온라인 신청(원문 구축 자료는 원문 이용)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