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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반인(泮人) 집단의 일부가 산대놀이 연희자였다는 기존 학설을 보강하고자 반인의 다양한 역할과 그 역할 간의 유기적 관계를 주목했다. 선행연구와 교육사학자 정순목이 성균관의 풍속을 적은 글을 종합해보면, 반촌(泮村)의 하층민인 반인에는 성균관의 입역노비, 반주인, 현방 상인 외에도 화척과 재인, 사노비 등 다양한 직역과 생업이 공존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중 재인, 즉 연희자로서 반인이 과거시험의 급제자 축하잔치, 성균관이나 사가(私家)의 신래(新來)와 같은 행사에서 잡희와 우희 등 공연과 오락을 제공했음을 여러 사료를 통해 검토할 수 있었다. 영조 12년(1736)에 발생한 ‘반인의 산붕놀이’ 사건은 반인과 산대희(山臺戱)의 관련성을 보여준다. 이는 이미 전경욱이 『승정원일기』, 『영조실록』, 『신보수교집록』, 『태학지』를 통해 밝혀낸 사실이며, 필자는 최근 정조 대부터 정리되기 시작해 순조 대에 간행된 『홍재전서』에서도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로써 산대희를 벌였던 주체이자 연희집단이 곧 반인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반인의 일부가 북방민족계통 후예로서, 시정의 산대놀이 놀이꾼으로 존재했던 모습을 살펴보고자 했다. 백정의 전신인 재인과 화척이 북방민족 수척 계통에서 유래됐다는 것은 역사학계에서 통설이 된 지 오래다. 필자는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반인의 말소리가 북방의 음성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내용을 제시하며 반인의 일부가 북방민족의 문화적 특징을 일정 정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더불어 소 도살 및 판매라는 업종에서 반인과 백정이 경영자-고공과 같은 상호보완적인 관계였고, 공통적으로 국가 장례에서 여사군으로 나섰음을 확인했다. 끝으로, 『기완별록』, 『경복궁영건일기』, 〈경복궁영단가〉 등을 토대로 서울 시정의 본산대놀이를 비롯해 다양한 연희 종목을 살펴보면서, 현방 상인과 재인과의 관계에 주목해 연희패 근거지가 반촌, 현방, 백정촌과 연결되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반인 집단이 상인이자 예능 집단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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