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
연구/단체명을 입력해주세요. |
|
|
|
|
|
* 주제를 선택하시면 검색 상세로 이동합니다.
이 글의 목표는 진선(陳選)의 『소학집주(小學集註)』가 『소학구두(小學句讀)』, 『소학증주(小學增註)』로도 불리는 까닭과 그 판본들이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많이 간행되었는지 확인하고,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어떠한 위상을 갖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확증할 수는 없지만, 『소학집주』는 1469년에 처음으로 편찬되었고, 1473년에는 약간의 수정을 통해 『소학구두』라는 명칭으로 간행되었다. 이후 어느 시점에 『소학집주대전』에 오눌(吳訥)과 진조(陳祚)의 주석과 함께 수록되면서 『증주(增註)』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이렇게 저작된 진선의 『소학집주』는 중국에서 1469년 이래 청나라 말기까지 끊임없이 출판되었고,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1634에 간행된 중국목판본 『소학집주』가 소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소학집주대전』의 유입과 함께 율곡 이이(李珥)가 중국의 주석서인 하사신(何士信)의 『소학집성』과 왕오(王鏊)의 『소학집주대전』, 정유(程愈)의 『소학집설(小學集說)』의 내용을 집대성한 『소학제가집주』를 1579년에 편찬하면서, 진선의 『소학집주』는 단 한 차례도 간행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으로 전파된 『소학구두』가 조선을 통해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기존의 연구성과는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일본에서는 1600년대 중반 무렵 『소학구두』본이 유입된 이래, 1656년을 기점으로 1934년까지 지속적으로 도쿄(東京), 교토(京都), 오사카(大阪)를 중심으로 진선의 주석서를 간행하였고, 특히 오사카에서 많이 간행되었으며, 메이지[明治] 시대에 와서는 출판사를 중심으로 출판이 이루어지고, 전국의 서점을 통해 판매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전화번호 | ※ '-' 없이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세요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정기간행물실(524호) / 서가번호: 대학02
2021년 이전 정기간행물은 온라인 신청(원문 구축 자료는 원문 이용)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