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대표형(전거형, Authority) | 생물정보 | 이형(異形, Variant) | 소속 | 직위 | 직업 | 활동분야 | 주기 | 서지 | |
---|---|---|---|---|---|---|---|---|---|
연구/단체명을 입력해주세요. |
|
|
|
|
|
* 주제를 선택하시면 검색 상세로 이동합니다.
본 연구는 조선총독부가 1927년부터 1937년까지 식민지 아동정책을 수행하는 과정과 강화되는 내용을 살펴보고, 그 성격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통해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아동정책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첫째, 조선총독부는 1926년 도쿄에서 개최된 제1회 전국아동보호사업대회의 결의에 따라 1927년 ‘아동보호일’을 시행하였다. 1928년에 학무국 주관으로 행사를 개편하였으며, ‘양육’과 ‘보육’에 중점을 두었다. 이를 통해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 내 ‘관민합동’의 성격인 연중행사로 ‘아동보호일’을 시행하고자 했다.
둘째, 조선총독부는 1931년 제2차 전국아동보호사업대회의 결의에 따라 ‘아동보호일’을 ‘유유아애호주간’으로 행사명을 변경하고, 일주일간 행사를 전개하였다. 그러나 당시 개최된 전국아동보호사업대회에서는 행사에 대한 내용에 논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 때문에 조선총독부가 변경한 행사 내용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셋째, 조선총독부는 1935년 제3회 아동보호사업대회의 결의에 따라 행사명을 ‘유유아애호주간’에서 ‘아동애호주간’으로 변경하였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들은 어린이날을 개최하여 그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1937년 7월 중일전쟁으로 모든 집회와 행사가 폐지됨에 따라 조선인들의 어린이날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다만, 조선총독부의 ‘아동애호주간’은 일제가 패망하기 전까지 개최되었다. 특히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의 어린이날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식민지 조선 내 유일한 관변행사로 어린이날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조선총독부의 ‘아동애호주간’은 일제의 식민지 아동정책을 수행하는 도구로 활용되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전화번호 | ※ '-' 없이 휴대폰번호를 입력하세요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 서가번호: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