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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시대 石城 축성자료를 분석하여 축조 분담 기준과 공역조직의 관계를 찾아보고, 그 특징을 신라의 〈경주명활산성작성비〉와 비교하였다.
조선시대의 축성 분담은 전체 축성 구간에서 지형의 분기점을 대단위(道)로 나눈 뒤 역역징발 단위인 군현 단위로 중단위 공역조직을 구성하였다. 중단위 공역조직이 분담받은 축조량은 최소 13보에서 최대 47보가량이고 그 안에 소단위로 세분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축성 단위는 감역관을 둔 중단위였고 각자성석도 주로 중단위에서 새겼다.
〈명활산성작성비〉에서 최소 14보에서 42보의 축조구간을 분담받았는데, 그 내부에 다시 소단위를 두어서 공사량을 세분했다.
이처럼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석축성의 실질적인 축조 분담은 지방지배체제 하의 역역단위로 주로 중단위였고 상황에 따라서 소단위로 세분하기도 했다. 신라의 축성 기록 중에서 전체 둘레[周]가 강조된 다른 축성공사도 확인할 수 있는 축성 운영방식으로, 한반도에서 금석문에 새겨 축조 책임을 밝히는 石城의 축조 운영방식의 시원은 신라에 있음을 확인하였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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