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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시학을 향한 김억의 모색과 도정 : 1930년 전후 문예론과 시형론(詩形論)을 중심으로 = Kim Eok's search and journey towards modern poetics : focusing on literary theory and poetic form theory around 1930s
한국 시문학사에서 서구 상징주의 문학 번역과 창작을 통해 자유시를 선도하던 김억의 문학은 1925년 전후 조선적이고, 전통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으로 평가되어 왔으며, 이런 변화의 결과로서 「격조시형론 소고」는 대표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본 연구는 조선-민족-전통과 관련지어 연구되면서 제한적으로 평가되어 온, 1930년 전후 예술과 시의 본질적인 가치와 상징주의 시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근대시학의 정립을 향해 나간 김억의 문학의식 및 모색의 과정을 고찰했다. 이런 논의를 위해 1920년대 중반에서 30년까지 집필된 김억의 주요 평문들을 목록화하고 그 내용을 간략히 밝힘으로써 조선적 이념으로 국한되지 않는 문학적 특성들을 제시했다. 김억은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하위 장르인 시가(詩歌)의 독립적 가치를 주장했는데, 이러한 인식은 공리적 주제를 내세우는 카프나 특히 주요한, 이광수 등의 국민문학파와 차별화되었다. 김억은 ‘조선’ 문학이란 전통이나 민족의 복원이 아니라 현대, 즉 오늘날 조선의 현실, 사상, 감정이 담긴, 동시대성을 강조하는 문학임을 주장함으로써 국민문학파와 차별화되었고 실천성을 담보한다. 그리고 시론, 작가론, 작품론 등에서 상징주의와의 관련성이 당시 문학의식에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격조시형론의 집필 동기로 제시하는 음률, 음악성, 정조 등의 탐구는 김억이 참조했던 도이 고우치(土居光知)의 『文學序說』 ‘시형론’에서도 드러난 바, 상징주의에 기반한, 두 문인의 유사한 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김억은 조선의 감정을 표현할, 현대 민요의 가능성을 서구 상징주의 시인들의 창작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자유시형에서 정형시형으로의 변화가 조선만이 아니라 서구 상징주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세계 문화적 현상이었음을 빠르게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은 한국 상징주의 수용에서도 의미 있는 문학사적 지점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김억은 1920년대 중반 이후 예술의 본질과 시의 독자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통해 공리적 이념을 표방하는 국민문학과의 차이를 명확히 했고, 나아가 서구-상징주의와 전통-민요 등의 시가를 넘나들면서 조선의 현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공동 시형을 탐구했다. 이런 과정은 그가 1910년대부터 서구 상징주의 수용을 통해 조선의 근대시를 선도해왔던, 근대시학 정립을 향한 모색과 노력의 과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