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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10년대 전통연희와 신파극과 관련해 아직 연구가 미진한 1910년대 신파극과의 관계 속에서 전개된 전통연희공연의 양상을 이 시기와 관련한 핵심논제 중 극장과 경성구파배우조합에 국한해 선행연구의 내용을 중심으로 재검토해보았다.
그 결과, 기존의 논의와는 여러모로 큰 차이가 있었다. 그간 1910년대 신파극의 유입으로 극장에서 전통연희공연은 축소되었다고 판단해왔다. 그러나 1910년대 당시 대표적인 조선인 극장 가운데 신파극을 적극 수용해 전용 극장으로 운영했던 연흥사를 제외하고는 운영 기간별로 광무대, 장안사, 단성사에서 전통연희는 공연의 빈도에 있어 1910년대 전후반기에 걸쳐 신파극에 비해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경성구파배우조합의 결성은 신파극의 흥행에 따른 전통연희공연의 위축에 의한 영향보다는 일제가 1915년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철저히 준비했던 물산공진회에서의 여흥을 담당하기 위해 일제의 허가를 받고 조직되었다는 데 무게를 둘 수 있었다. 나아가 경성구파배우조합이 전개했던 ‘신구파 공연’이란 신파극단에 의한 공연이 아닌 구파배우들에 의한 신파극 공연이었으며 경성구파배우조합이 조직했던 ‘신파개량단’은 존립의 위기에 놓여 있던 신파연극인들을 위한 경성구파배우조합의 협력에 따른 조치였다는 데 그 타당성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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