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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은 심리학(1818)과 교육학(1813)에 이어 슐라이어마허가 독자적인 강의 교안을 위해 몰두한 마지막 철학 분야이다. 그는 이미 청년기에 미학적 문제들에 몰두하였고, 베를린 초기 낭만주의의 공동 창시자였으며, ‘종교에 관한 연설’(1799)에서 예술 종교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미학은 특히 윤리와 관련된 중요한 학문 중 하나이며 개별 예술과 윤리적 과정 사이의 연결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슐라이어마허는 말한다. 슐라이어마허는 1819년, 1825년, 그리고 1832/33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미학에 대한 강의를 했으며, 또한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표하기 위해 “예술의 개념의 범위와 그 이론과 관련하여” 는 논문을 썼다. 그리고 미학에서 말하는 감정과 개인의 기분(Stimmung)에 대한 예술의 기원을 설명하며 종교와의 밀접한 관련성을 정당화하였다. 슐라이어마허의 윤리에 대한 강의에서도 이런 예술과 종교의 근접성을 강조한 내용이 드러난다. 슐라이어마허가 예술 작품의 생산과 개별 예술 분야의 체계적인 결정에 초점을 맞춘 접근 방식은 기존 독일관념론자이자 칸트철학의 비판자이기도 한 셸링이나 실러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술철학에 있어서 역사적 중요성을 가진다. 이처럼 슐라이어마허의 미학은 독일관념론의 흐름에서 덜 알려진 이론 중 하나이지만, 칸트 철학의 극복과 발전이라는 독일관념론의 흐름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셸링자연철학을 보완한 슈테펜스의 영향으로 인간의 감성과 자연과학이 예술과 가지는 깊이 있는 이해를 담아내기에 현대 예술의 흐름에 맞추어 가장 주목할 만한 분야로 간주할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의 미학은 헤겔의 예술 철학과 같은 시대의 역사적 경향을 공유하였기에, 예술 작품과 예술 실천에 관해서는 다양한 역사적 발전과 사회체계와의 연관성을 강조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