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사
임진왜란 시기 朴忠後의 起義 활동, 명 관원 접대와 출토 만사 =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1598(壬辰倭亂), Park Chung-hu(朴忠後)’s military activities, entertainment and Ming Dynasty(明)’s inspectors and envoys visit
본 논고는 선비들이 사육신이 남긴 유일한 혈손 집안인 하빈 묘골 출신 朴忠後의 죽음을 애도한 만사 16점과 제문을 중심으로 임진왜란 시기 박충후가 활약한 제반 활동에 대해 고찰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박충후는 사육신 朴彭年의 5대손이다. 선비들은 박충후가 충절을 상징하는 사육신 가운데 유일하게 혈족을 남긴 후손임을 숭앙했다. 박충후 자신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집안의 전통을 이어받아 동생 朴忠胤과 함께 나라를 지키고자 적극적으로 창의 활동에 나섰다. 특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넉넉한 자산으로 군병 조직의 군량으로 제공하거나 전란으로 도탄에 빠진 민초들을 구하기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다. 당시 많은 민초들은 박충후의 선행에 힘입어 생명을 구하였다. 박충후는 의병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싸워 근 1백 명을 참획하여 경상좌도 의병 가운데 전공이 가장 뛰어났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박충후의 두 딸은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절개를 지키고자 낙동강에 투신하는 비극도 맞이하였다. 명 감찰 관원과 접반사 일행이 하빈으로 내려왔을 때 박충후는 예절과 정성을 다해 접대에 나서 감관 徐觀瀾의 마음을 움직였고, 장차 조선 조정의 변무에 일조하였다. 최근 박충후 유택에서 출토된 선비들의 만사 16점은 박충후의 일대기와 선비들의 교류 활동, 400여 년 전의 만사 모습과 장례 문화를 살펴볼 수 있어 문화재(문화유산)의 가치가 아주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