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기사
기생의 예(藝)의 근대적 구성 : ‘예기(藝妓)’의 용례를 중심으로 = The modern construction of Kisaeng's Ye (art) : focusing on the usages of the term Yegi (artistic Kisaeng)
본고는 20세기 초에 통용된 ‘예기(藝妓)’의 용례를 중심으로 근대 전환기 기생의 정체성과 기생의 예가 재구성되는 과정에 주목하고, 1900년대 근대식 극장 공연 형식으로 등장한 ‘연예(演藝)’의 장에서 예기가 점한 위치를 고찰하였다. 1900년대 등장한 ‘예기’는 매음에 연루된 ‘창기(娼妓)’의 대립항으로서 “매창불매음(賣唱不賣淫)”을 표방했던 ‘기생’의 등가어로 쓰이기 시작했으며 가무를 파는 직업적 예인, 즉 ‘매창기(賣唱妓)’로서의 기생의 근대적 지향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1900~1910년대 사설극장 무대에서 활약한 삼패 예기와 극장소속 예기들의 사례를 통해 당시 ‘예기’의 다면적 의미망, 특히 ‘매신매창(賣身賣唱)’으로 범주화된 이들이 ‘예기’로 호명되고 ‘매창기(賣唱妓)’로서의 지위를 획득하는 과정을 규명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또한 채경(彩瓊)의 사례를 통해 삼패 예기들이 가무를 통한 인정투쟁을 거쳐 기생으로 승격하는 과정에서 기생을 능가하는 유명인으로 전이하는 사례를 제시하고, 광무대 소속 예기 옥엽(玉葉)을 통해 공적 친밀성이 만들어내는 대중적 스타, 즉 셀레브리티 이미지와 기예와 신체성, 감정 노동으로 스스로를 상품화했던 근대적 여성 기예 노동자의 취약성이 겹쳐지는 양가적인 측면을 살펴보았다. 1920년대 이후 유흥 산업의 가속화되면서 매창(賣唱)과 매신(賣身)의 경계를 교차했던 기생의 유동적이고 리미널한 정체성은 한층 복잡해지지만, 1910년대 극장과 신문 매체 등 근대적 공공 영역에서 ‘매창기(賣唱妓)’로서 예기들이 획득한 공공성(publicness)은 새로운 공적 여성 형상을 양산하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