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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린은 조선 후기 노론 집권 세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고난받았던 영남 지역의 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의 생애가 그럴 뿐만 아니라 남아있는 작품으로 보았을 때도 역시 그렇다. 따라서 그를 조선 후기 당대 노론 집권 세력에 의해 고난받았던 영남 지역의 학자를 대표하는 한 사람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남아 전하는 기록이나 그가 남긴 문집으로 보았을 때 이런 평가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창작한 문학 작품을 도외시하는 것은 정당한 태도가 될 수 없다.
불과 244수에 지나지 않는 그의 시는 감정을 이면에 감추어 감상적이기보다 이성적이지만, 그의 시는 그가 느낀 감정을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무미건조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 속에는 그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가 추구했던 주지적이고 이지적인 이미지 중심의 표현 기법은 그의 시를 평면적으로 만든다. 그러나 소리를 억제하고 역동적인 표현을 배제한 그의 시는 화려하지 않지만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조덕린의 시를 보면 그의 시가 그의 삶과 같은 궤에 있는 것으로, 문학적 성과보다 삶의 진실을 담고자 하는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조덕린의 시에 드러나는 감정은 진폭이 크지 않다. 그러나 급격한 파동을 타고 격렬한 파장을 그리지 않는 그의 시가 오히려 더 깊고 긴 여운을 보여준다.
조덕린의 시를 보면 그의 시가 문학적 성과보다 삶의 진실을 담고자 하는 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의 시가 일정한 성취를 보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시는 문인의 시라기보다는 수양된 인격을 지닌 학자의 시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그는 작가 의식을 지닌 문인이라기보다 스스로를 학자로 간주한 사람이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따라서 그의 시를 학자의 시로 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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