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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에서 ‘공백(void)’은 1980년대의 예외상태를 환기하는 동시에, 법의 보호 밖에 놓인 존재가 잠재성을 드러내는 시적 장치로 작용한다. 본연구는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 잠재성 개념을 이론적 준거로 삼아, 기형도 시에 나타난 공백의 기원과 형상화 방식을 분석하고 그 존재론적 함의를 규명하였다. 특히 예외상태와 호모 사케르의 존재 조건 속에서 형성되는 공백이 결핍의 표상을 넘어 존재 전환의 계기임을 밝히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Ⅱ장에서는 공백의 상상력과 식물적 존재를 통해, 예외상태 속에서 법적 · 윤리적 보호로부터 배제된 호모 사케르의 존재 조건이 어떻게 시적으로 형상화되는지를 살폈다. 주권 폭력에 의해 정상 질서가 중단된 현실은 시인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각인되었고, 그로부터 비롯된 공백의 상상력은 존재의 취약성과 생존의 잠재성을 동시에 포착하는 시적 기제로 제시된다.

Ⅲ장에서는 공백의 구체적 양상과 존재의 잠재성 발현 방식을 ‘목소리의 부재와 침묵/증언의 딜레마’, ‘시간의 중단과 존재의 질적 변화’, ‘허(虛)와 역설적 구원’의 세 층위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대립적 이미지의 병치와 그의미적 충돌은 미학적 긴장을 형성하며, 소멸의 경계에 선 존재가 잠재성을 사유하게 되는 시적 원리로 나타난다.

결국 공백은 예외상태 속에서 호모 사케르의 존재를 고정시키는 결핍의 징후가 아니라, 새로운 생의 가능성을 예비하는 시적 조건이다. 이러한 공백의 수사학은 기형도 시의 미학적 특질을 이루는 토대로서, 한국 현대시가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존재의 변화를 사유해온 방식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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