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후기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왕실 가계의 회화기록과 현전작을 분석하였다. 영조는 숙종과 김시민의 기록을 통하여 연잉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음이 확인되는데, 영조 본인의 《영조어필첩》이나 기록으로 전하는 <반잠도>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공적으로 제작되고 이해되었다. 반대로 사도세자의 경우 주제 뿐 아니라 회화를 사여하는 대상이 의관이나 환관으로 확인되어 사적 관계망을 기반으로 한 사여의 측면이 간취된다. 정조 역시 공적인 의미를 가진 회화는 화원에게 맡겼으나 정조 본인이 그린 회화는 사도세자의 예와 같이 사적 교유와 효용을 목적으로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회화 제작과 사여과정에서 공식적인 의미보다 사적 효용이 강하게 작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영조가계의 회화들이 오늘날까지 다수 전하고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정조와 고종의 추숭의도가 반영된 지속적인 기록 및 보존 작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는 상징적 존재인 왕이 회화활동에 있어서는 각각의 개별성과 사적 측면이 반영되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에 있어서는 여전히 신분적인 측면이 기록, 감상, 인식, 보존 등에서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재인식되고 있었음을 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