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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무인정권기 김이생(金利生)은 13세기 전반 약 10여 년 동안 우가하(亏哥下)·동진(東眞)·몽골 침입에 모두 맞섰던 유일한 무관으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먼저, 우가하의 북계(北界) 침입에 대해서는, 1226년(고종 13)에 김이생은 군사 200여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석성(石城) 기습전을 펼쳐 선무부통(宣撫副統) 등 적군의 참모진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때 이후로 우가하는 고려 북계를 다시 침공해 오지 못했다.
다음으로, 1227년(고종 14) 동진의 동계(東界) 침입에 대해서는, 그는 북계의 별초군(別抄軍)을 거느리고 동계 화주성(和州城)으로 급히 달려가 성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야간출격전을 통해 적군을 1,100명이나 베는 대승을 일구었다. 화주성 전투 승리 이후 김이생은 포상으로 자문지유(紫門指諭)에 제수되었으며, 김이생의 진두지휘에 의한 화주성 전투는 고려 3군의 의주(宜州) 전투 패배 속에서도 빛나는 유일한 승리로서 전사적 의미가 있다.
한편, 1235년(고종 22) 안동 사람의 모반과 몽골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상장군(上將軍) 김이생은 동남도지휘사(東南道指揮使)에 임명되었다. 그는 휘하 군사들과 경상도 주현민을 결집시켜 낙동강 동쪽 지역(경주·양산 등지)을 적군으로부터 지켜냈다. 이러한 무관 김이생의 북방 이민족에의 항전은 당시 고려가 처한 대외적 위기를 조금이나마 극복하는 데 일조하였고, 강화도로 천도한 최우정권의 강도(江都) 체제 정비에 도움을 주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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