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公’은 민산의 균등화와 민생의 안정을 위한 仁政과 德治의 근거로, 국가는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통해 민생을 안정시키고 사회통합력을 높일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강력한 실체로 인식되었다. ‘公天下’를 실현할 주체로서 국왕과 이를 둘러싼 관료・사족들에게는 학문탐구와 인격수양을 바탕으로 국가・사회 영역에서 효능을 발휘하는 內聖外王・修己治人이 이상적 모델로 간주되었다. 재분배 정책의 핵심인 井田의 모델은 현실과 만나 주로 均賦均稅의 차원에서 논의되었다. 여기에는 왕토사상이 드리워져있었다. 유형원의 반계수록에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범유가적 사유를 결합한 위에 당대의 사회적 윤리와 규범에 입각한 재분배 체계를 자기화한 국가를 상정하였다. 공천하의 또 하나의 이상인 ‘봉건’도 군현제 국가의 지배력 강화와 효율적 통치를 위한 수단적 의미가 컸다. 공전제를 통한 均産을 바탕으로 均賦均稅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유형원 ‘公’의 핵심적 내용이었다. 公田制의 운영에는 몇 가지 미비점도 발견되지만 전체적으로 유형원의 ‘국가’는 개인의 윤리와 규범을 사회적 차원에서 구성해 내는 구심이자 체제교학을 조직적으로 전파하는 하향식 권력의 강력한 주체였다. 이러한 인식은 이후 전개되는 경세론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는 국가를 조직하고 인식하는 역사적 토양으로 근대 이후 정치사회적 현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단초로서의 의미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