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서학-천주교의 조선 전래가 만든 파장에 대한 조정의 입장 변화와 그에 따른 처리 방식의 차이를 살핌으로써 척사의 주체로서 국가가 내세운 이념과 그 실제, 그 이격에서 발생한 논리적 모순을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정조 대 학문적 자원으로 수용되던 서학은 천주교 공동체의 노출에 따른 반감이 커지며 점차 학이 아니라 술로 폄하되었고, 결국 정조 사후 이루어진 신유교옥을 통해 대박청래ㆍ황사영 백서 등이 드러나며 ‘좌도’이자 반역 집단이라는 극단적 비판을 받았다. 이 연구는 서학이 사학을 넘어 좌도로 폄하되고 사회적 위험인자로 간주되게 된 배경과 맥락, 논리와 명분을 분석한 뒤 이를 토대로 조선 조정이 내놓은 척사윤음의 세부 맥락과 그 함의를 분석한다. 나아가 형정을 수단으로 내세우지만 교화라는 근본적 목적을 배제할 수 없는 척사윤음의 이중적 성격이 순조부터 고종 대까지 발효된 척사윤음에 어떻게 나타나는지 확인하고 이를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된 천주교도 처벌의 명분과 교화의 이념 그리고 그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