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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중원문명 동쪽에서 부상했던 고대 한국의 초기 정치체로, 양자 간의 교류・갈등 과정에서 통합력과 정체성이 제고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다만 고조선과 관련되는 선진문헌들은 대개 뒤에 재정리된 것인데다 장기간에 걸친 단속적인 사건들을 단기간의 일회적인 사건처럼 압축․요약하여 기록하고 있고, 후대 문헌 역시 서로 다른 관점에서 상호 관계를 기술하고 있어 비판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문헌사료 신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물질자료의 변동과정을 중심으로 연대상향론과 영역확장론에 유의하며, 재구성할 필요성이 있다.
단경식동검문화의 발전 과정에서 지역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해지면서 고조선도 정치체로 부상한다. 특히 비파형동검문화의 후기 단계부터 세형동검문화 전기 단계까지 분묘군이 커지면서 내부에서 차별적인 수장묘가 발달하고 ‘무기+의기’ 조합 관계가 더욱 강화되는 것을 통해 무력과 이념의 상징성을 겸비하는 수장권이 발달하였음이 주목된다. 이와 같은 수장권은 요중~서북한권에서 가장 발달하였는데, 하북지역이나 산동지역에는 고조선과 교류하였음을 보여주는 유물들도 확인된다. 이는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와 경쟁하고, 제나라와 교류했던 고조선을 보여주는 것일 수가 있다.
고조선계 물질문화는 이전보다 차별화가 뚜렷해진 정가와자유형의 비파형동검문화와 상보촌유형의 세형동검문화가 가장 주목된다. 정가와자유형은 기원전 6~4세기경 요동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서북한권으로 정치적・경제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요서지역과도 교류하고 있어 고조선의 물질문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기원전 3세기경 요동동부~서북한권에서 유행하는 상보촌유형은 정가와자유형을 계승하며, 전국연계 물질문화를 일부 수용하는 것이어서 역시 고조선의 물질문화로 볼 수 있다. 이에 한국 고고학의 시대 구분에도 정가와자유형이나 상보촌유형을 고려하여 ‘고조선시대’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럴 경우 ‘청동기시대’에 이어 ‘고조선시대’가 설정되는 안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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