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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의 후원 아래 1927년에서 1937년까지 지속된 세계피압박민족대회(League Against Imperialism, LAI)는, 공산주의의 역사의 일부이자 탈식민 시대의 시작점이라는 두 가지의 시각을 담지한 프로젝트였다. 성공적이었던 1927년의 첫 대회 개최 이후, 1928년 여름부터 세계피압박민족대회가 코민테른에 종속되면서 반제국주의적이고 반식민주의적 연대라는 대회의 명성은 상당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의 경우, 재독 유학생의 모임인 유덕고려학우회 구성원들이 주축이 되어 대표단을 구성하였다. 유덕고려학우회에서 이극로, 이미륵, 황우일이 참여하였고 프랑스의 김법린 그리고 허헌이 합류하였다. 한국 대표단은 『한국에서의 일본 제국주의 정책 보고』라는 연설문을 발표하고 『조선 대표 결의안』을 본 대회에 제출하였다. 그리고 언론 보도 자료로 『한국의 문제』를 배포하였다. 『한국의 문제』에 제시된 통계자료를 면밀하게 검토해 보면,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를 ‘위조’해 외국 언론에 ‘선전 및 홍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27년의 대회에서의 한국의 사례는 이중으로 주변화된 경향이 있다. 당시 세계피압박민족대회는 영국 및 프랑스라는 제국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들의 피식민지(민) 억압에 대한 논의에 더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피압박민족대회에 대한 국내외 한인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종전 이후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국가들은 제3세계 열풍을 주도하며 새로운 질서 재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반면 동남아시아 및 남부아시아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은 다른 행보를 보이게 된다. 이는 내부적으로는 분단이라는 정치적 요인과 외부적으로는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 등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가 복합적으로 얽혀 작용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앞서 『한국의 문제』에서 제기한 일제 식민정책 비판에서 알 수 있듯이, 반제국주의적이며 반식민주의적인 민족운동에 기인한 한인의 독자적 정서가 작용한 측면도 존재하였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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