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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초기 유대교 메시아니즘이 하스몬 왕조의 통치 정당화 과정에서 어떻게 정치적⋅신학적으로 재정의되었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마카베오기 상 14:41에 나타난 “참된 예언자가 나타날 때까지”(ἕως τοῦ ἀναστῆναι προφήτην πιστόν)라는 문구를 중심으로, 유대교의 메시아적 기대가 단순히 종교적 이상에 머물지 않고, 실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통해 구체화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본 논문은 메시아니즘의 탄생과 발전이 이방인 지배라는 정치적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변모하는 역동적 현상이었음을 강조한다. 헬레니즘 시대의 유대교는 대제사장 중심의 신정주의라는 현실 정치와 이상화된 신학적 종말론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힘이 긴장 관계를 이루는 구조였다. 이러한 긴장은 하스몬 왕조가 고대 헬레니즘 세계의 ‘유대교 신정국가’라는 종교적⋅정치적 지위에서 드러난다.
논문은 우선, 하르트무트 슈테게만(Hartmut Stegemann)의 쿰란의 메시아니즘에 나타난 ‘종말론의 역사화’ 과정을 제시한다. 그는 쿰란의 메시아 상(像)에 관한 관념 변화가 민족 집단에서 개인으로, 그리고 다시 예언자적 메시아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쿰란 공동체는 “예언자와 아론 및 이스라엘의 메시아들이 올 때까지”(1QS 9:11, 비교. CD 12:23-13:1; 14:18; 19:10-11a; 19:33-20:1)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왕과 제사장’에 해당하는 ‘종말론적 메시아’를 역사적 인물에서 찾았다. 이러한 신학적 토대 위에서, 마카베오기 상의 저자는 시몬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참된 예언자가 나타날 때까지”라는 종말론적 유예 조항을 정치적 수사로 활용할 수 있었다. 물론 이는 하스몬 가문이 다윗 가문이 아니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자신들의 왕적인 권위를 신적 권위에 기반한 조건부 합법화로 전환하는 전략이었다.
앳킨슨(K. Atkinson)은 좀 더 구체적인 사례로, 하스몬 왕 히르카누스 1세의 영토 확장과 군사적 성공을 발람의 예언(민 24:17)이나 예레미야 예언의 성취로 간주하여 히르카누스를 예언자적 메시아로 정당화했던 일부 유대인들이 있었다는 점을 밝힌다. 그러나 쿰란의 4QTestimonia는 그러한 대중적 메시아니즘을 비판하여 그를 여리고를 재건한 “벨리알의 사람”으로 규탄하며, 그가 예언자적 메시아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폭로했다. 이는 하스몬 왕조를 두고 벌어진 당대의 메시아니즘 논쟁으로서, ‘종말론의 역사화’를 위한 전승의 재해석과 메시아 정체성을 둘러싼 신학적 투쟁으로 발화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초기 유대교의 메시아니즘은 신정체제라는 정치 현실과 신학적 종말론이라는 양극(兩極)의 긴장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하스몬 가문은 이 긴장을 정치적으로 활용하여 ‘종말론적 메시아’를 역사적 인물에게서 찾는 메시아니즘을 형성시켰다. 이러한 전통은 훗날 메시아니즘이 신학적,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되는 자양분이 되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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