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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초중반 백제와 신라는 북규슈를 중심으로 규슈의 여러 세력과 교섭하였고 나아가 자국인 집단의 이주·정착을 추진하였다. 백제는 주로 북규슈 해안지대의 중요거점과 대(對)고구려전에서 자국을 도왔던 세력들을 중심으로 교섭하였다. 이때 마한 세력은 백제의 규슈 교섭에 협조하기도 하였다. 신라는 내륙 지역인 온가가와 일대에 이주·정착하였고, 나아가 치쿠고 지역과의 교섭도 시도하였다. 중부 규슈에서는 아리아케해를 거점으로 치쿠고의 쓰쿠시노키미와 히고의 히노키미 세력을 중심으로 하는 수장연합세력이 등장하였다. 북동부 규슈에서는 미야코평야를 거점으로 왜 왕권이 신뢰하는 군사집단이 등장한다. 5세기 말이 되면 규슈와 그 주변 지역에서 정세 변화가 나타나는데, 왜 왕권이 왕통변동으로 혼란을 겪던 와중에 치쿠고의 이와이가 쓰쿠시를 장악하였다. 이때 백제는 이와이보다는 전통적인 교섭창구인 기나이와 교섭을 중시하였고, 이에 대외교섭로를 장악하여 경쟁자들 사이에서 우세를 점하려는 이와이와 대왜(對倭) 교섭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대가야 양 세력이 백제의 기나이교섭을 방해하였다. 이때 백제는 이와이보다는 전통적인 교섭창구인 기나이와 교섭을 중시하였고, 이에 대외교섭로를 장악하여 경쟁자들 사이에서 우세를 점하려는 이와이와 대왜교섭의 주도권을 유지하려는 대가야 양 세력이 백제의 기나이교섭을 방해하였다.
백제 무령왕은 이러한 이와이의 행보를 경계하며 비(非)이와이 세력을 결집·포섭하고 이와이의 동맹 세력인 히노키미 세력까지 포섭을 시도하였다. 또한 한반도 내 이와이의 교섭 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가야 공략에 집중하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이와이는 신라와 동맹을 모색하였고 신라 또한 이에 호응하며, ‘종자’·‘신라해변인’을 규슈로 파견하여 유사시에 대비하였다. 이와이의 난 당시 백제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였던 규슈의 지방호족·백제계 도왜인들은 난에 호응하지 않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이와이를 어려운 국면으로 몰아갔다. 이에 이와이는 지지기반이 상당하였던 도요로 ‘도주’하였다. 그러나 왜 왕권·히젠·반즈카 고분 세력의 압박과 아들 구즈코의 항복, 그리고 히노키미의 중립 행보를 목도한 도요의 호족들 간에 내분이 발생하면서 결국 이와이는 몰락하였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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