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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다시 삶과 사회의 현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5・18민주화운동의 진실규명 및 미해결 과제가 결합된 ’95 통일미술제_안티광주비엔날레(이하 안티비엔날레) 개최는 1990년대 한국미술사의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미술사는 당시의 기억을 제대로 품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민중미술의 영향력은 점차 약해졌고, 안티비엔날레는 이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탈이념, 탈정치의 흐름이 미술계 전반으로 퍼지던 시기 서울 중심의 미술사 서술 방식 속에서 이에 대한 관심은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연구는 기존 연구에서 보여준 안티비엔날레가 갖는 정치성보다 예술적 표현에 초점을 맞추고 그 상징적 함의를 파악하는데 집중하고자 했다.
먼저, ’95 광주비엔날레가 국제적 스타 작가의 작품 또는 특정 엘리트층의 예술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반해, 안티비엔날레는 현장성과 참여성을 기반으로 한 전통성과 연결된 민족예술의 주체성을 갖춘 예술이어야 함을 강조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논문은 안티비엔날레가 예술이 제의라는 형식을 통해 민족예술의 전통을 계승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며, 사회적 전환을 매개하는 문화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밝혔다.
안티비엔날레는 망월묘역 일대에서 개최되어, 성스러운 공간을 전시공간으로 전환했고, 종교적 의식이자,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고, 민주주의 사회를 찬양하는 글귀를 적는 등 예술 작품과 함께 결합한 하나의 복합적 제의 장이었으며 예술이 제의가 되고, 제의가 예술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특히, 만장설치와 상여행렬과 같은 퍼포먼스는 전통적 장례의례를 전유하기도 하지만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과 망각에 대한 저항, 그리고 분단 현실에 대한 은유를 의미했다. 이들은 한편 국가 주도의 문화기획이 5・18민주화운동의 문제를 은폐하거나 중립화하려 했던 정치적 현실을 예술을 통해 다시 환기했다.
이 미술제의 참여자는 참배객이 아닌 예술가와 관객으로 바꾸었고, 예술은 제의와의 경계를 무너뜨려 공동체 내에서 질서를 재조정하고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 제의적 형식으로 예술로서 공동체의 감성을 공감하고 서로 연대하며, 5・18민주화운동의 영령들과 함께 미래를 향한 희망과 기원을 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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