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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없는 화해는 가능한가 : 한국 용서·화해 담론의 개념적 모순 분석 = Reconciliation without forgiveness : conceptual contradictions in South Korean discourse on forgiveness and reconciliation
본 연구는 한국의 5・18 과거사 담론이 수십 년간 화해에 이르지 못한 구조적 원인을 규명했다. 핵심 원인은 서구 모델의 사죄-용서-화해 개념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문화적 맥락을 간과하여 발생한 개념적 괴리와 제도적 혼종성에 있었다. 독일의 과거사 문제 해결 모델은 개신교 신학의 일방적 사죄 구조에 기반하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과거사 문제 해결 사례에서는 우분투 철학과 기독교 용서론이 함께 작동했다. 그러나 한국의 과거사 문제 해결 과정에서는 상호주관성, 조건적 용서, 의와 복수의 정당성 등 유교적 윤리 구조가 작동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는 사죄, 용서, 화해 개념에서 삼중 괴리를 발생시켰다. 첫째, 사죄는 일방적으로 완결되는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인정을 요구하는 행위로 재해석되었고, 둘째, 용서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공동체 윤리가 작동하는 문제가 되었으며, 셋째, 화해는 실용적인 정치적 목표가 아니라 이상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해결한 도덕적 완성 상태로 이해되었다. 그 결과 한국은 ‘용서 없는 화해’라는 역설적 구조, 즉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피해자의 자발적 용서가 부재한 상태에서 정치적 화해만을 추구하는 구조에 갇히게 되었다. 본 연구는 한국 과거사 담론의 교착이 정치적 의지나 도덕성 부족이 아니라, 문화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개념들을 제도화하려 한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었음을 입증했다. 이는 과거사 담론 연구에서 제도적 접근을 넘어 문화적 토대를 함께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