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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는 초기 습작시절부터 조선문학의 세계문단 진출이나 프로문학의 국제화 지향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에드윈 시버(Edwin Seaver) 단편의 중역(重譯)을 거치지 않은 직접 번역이나 외국문학에 대한 관심 촉구는 이러한 작가적 관심의 맥락에 놓여 있다. 한편,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자신이 읽은 외국문학 작품의 구절을 인유, 변형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초기작은 주로 감상성이나 기교적 문학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작품을 인용하는 패러디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스리」 (『조선지광』, 1927.5)에서의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의 시 「방랑자의 저녁 노래(Wanderers Nachtlied)」 의 제목이 짧게 인용되거나, 「복수」 (『조선지광』, 1927)에서 요코미쓰 리이치(横光利一)의 「화원의 사상(花園の思想)」을 패러디한 시 작품 삽입이 이에 해당된다. 이는 외국어를 교양의 일환으로 습득한 대학시절의 다독(多讀)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면서, 동시에 이후 이어질 사회주의적 분위기의 작품들로의 전환을 위한 문학관의 모색 과정이기도 했다. 동시에 조선문학의 세계문단 진출이나 국제화 지향성에 대한 산문에서의 강조와도 연결된 창작 행위이기도 했다.
파시즘적 체제가 강화되는 1930년대 후반 문학들에서의 외국문학 작품의 인유 는, 기존 연구에서 언급된 것처럼 현실을 알레고리적으로 환기하는 효과를 낳는다. 그는 카프 해소와 전향의 무기력함으로부터 벗어난 1938년, 『동아일보』에 「창랑정기(滄浪停記)」를 발표한다. 이 소설은 서두에 괴테의 「방랑자의 저녁 노래 (Wanderers Nachtlied)」 두 번째 시편과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의미상으로 원시에 나타난 ‘돌아옴’과 ‘휴식’의 의미가, 더이상 불가능해진 일제 말기 파시즘 체제의 폭압성을 대원군 시절 쇄국정책을 지지 했던 서강대신 가문의 몰락과 대비되는 의미망을 형성하며 패러디적 관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괴테의 「방랑자의 저녁 노래(Wanderers Nachtlied)」 두 번째 시편은, 유진오가 읽었을 가능성이 높은 나카야마 마사키(中山昌樹)의 『시성 괴테(詩 聖ゲーテ)』 (洛陽堂, 1920)와 같은 저서에서 특별한 의미가 전해지기도 한다. 이 시는 괴테가 예정 방문했던 일메나우 산장에 그 자필 기록이 연소될 때까지 남아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작품이라, 모든 것이 폐허가 되어 버린 「창랑정기」 속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강한 대립적 의미를 형성한다. 괴테라는 표상이 유진오에게 있어 프랑스 혁명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서구 근대의 이미지와 맞물린 작가였음을 염두에 둔다면, 파시즘적 체제 강화 분위기 속에서 이와 같은 인유는 더욱 은밀히 현실을 자조하는 의미를 얻게 된다.
1939년 『문장』지에 발표된 「가을」은 서사의 부분마다 인유된 왕유(王維)의 『임고대(臨高臺)』 유우석(劉禹錫)의 『秋風引(추풍인)』, 형숙(刱淑)의 「제자은탑(題慈 恩塔)」, 에드거 앨런 포(Edagar Allan Poe)의 「F에게(To F--)」 의 일부 구절이 주인공 기호의 내면 심리와 조응되는 양상을 보여, 다양한 문학 작품의 자유로운 엮어냄을 통한 미적 효과를 노린 패스티쉬(pastiche)로도 볼 수 있다. 특히 한시 인용의 경우 명확히 저자명을 작품 속에 병기하고 있음에 반해, 에드거 앨런 포의 시는 저자명을 삭제하고 이를 광고 문구로 오해하게끔 만드는 언술을 추가하고 있다. 이 부분은 소설 속 홍림의 동양론에 대한 기호의 반감 부분, 「구라파적 교양과 현대 조선 작가」와 같은 유진오식 교양론과 함께 읽으면 당대 담론장에서 말하는 유행적 동양론에 대한 작가의 은밀한 대응 의식을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된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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