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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연 속의 성학론과 교화론 : 중종대 조광조의 「경연진계」를 중심으로 = The neo-Confucian discourse of sage learning (Seonghak) and moral transformation (Gyohwa) in the royal lectures of early Joseon : focused on Jo Gwangjo's Gyeongyeon Jingye during King Jungjong's reign
이 글은 조선 전기 경연(經筵)에서 성학론(聖學論)과 교화론(敎化論)이 어떻게 펼쳐지는가에 대한 관심에 입각하여 이를 조광조의 「경연진계(經筵陳啓)」를 중심으로 고찰했다. 조광조는 조선 전기의 경연의 역사에서 성학론과 교화론의 본격적 전개의 출발점에 서 있는 인물이며, 그의 성취는 이후 이황의 『성학십도』나 이이의 『성학집요』 등의 결실로 정점에 이른 성리학적 성학론과 교화론의 토대가 되었다. 조광조의 성학론은 임금을 성왕으로 만들고자 하는 목표 아래 마음의 주재적 위상을 하늘의 지평과 연결하며 확보하고, 경(敬)과 격물치지성의정심(格物致知誠意正心)을 중심으로 한 공부의 골격 위에, 공(公)/사(私), 의(義)/리(利), 군자(君子)/소인(小人) 등의 대립적 가치에 대한 명확한 분별 인식과 실천을 끌어내는데 주안점을 둔다. 조광조의 교화론은 궁극적으로 성리학적 예악형정(禮樂刑政)의 질서, 학교 및 향촌 교육 체제를 온전히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를 위해 조광조는 특히 왕을 보좌해서 교화를 이루어갈 군자적 소양을 갖춘 신하들의 확보, 그리고 이에 필수적인 사풍(士風)의 진작을 위한 왕의 역할을 강조한다. 조광조에게 성학론과 교화론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왕의 지위에 있는 자의 학문(성학, 도학)은 반드시 교화의 실질적 결실로 이어져야 한다고 보며, 이를 위해 왕과 신하가 긴밀한 조화적, 보완적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본다. 비록 이론적 정교함의 기준에서는 아직 성근 면이 있지만 성학과 교화의 요체를 명철하게 정리했고 이를 둘러싼 강렬하고 순수한 실천적 모범을 보여주었던 조광조는, 이후 이황과 이이 등에 의해 조선 성리학사에서 성학(도학)과 교화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되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조광조, 나아가 이황이나 이이의 사례를 두루 볼 때, 조선 전기의 성학론과 교화론의 전개에 있어 경연 및 그와 맥을 같이 하는 왕을 향한 진언 장치들이 결정적 기반이 되었다는 점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