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호기사보기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결과 내 검색
동의어 포함
조선 15세기 태조 대에서 성종 대까지 대학연의(大學衍義)의 경연 강의 내용을 주요 분석 대상 자료로 삼아, 왕도정치를 지향하는 주자학의 정치 문화가 조선에 정착되는 과정, 그리고 대학연의의 진강 내용이 국정 운영에 활용되는 양상을 살펴보았다.
고려말에 대학연의가 경연에서 진강되고 군주수신의 교재가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대학연의로 바뀌면서 이상적인 제왕상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제삼왕을 지향하는 주자학의 왕도정치 이념은 조선 건국의 주체 세력이 된 신진 사대부들 사이에 전파된다. 그들은 대학연의 경연 강의를 통해 자신들의 이념을 현실 정치에 펼치고자 한다.
태조는 대학연의를 ‘제왕학’의 텍스트로 인식한다. 그러나 제왕학의 핵심이 군주수신에 있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태종도 대학연의를 정치 지침서로 인식하여 국정 운영에 활용한다.
세종은 대학연의를 왕도정치를 실행하는 데 필요한 이념서이자 방법서로 간주한다. 그는 왕도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군주의 수신이 요구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신하들도 세종에게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를 할 것을 간청한다. 군주와 신하가 왕도정치를 펴고자 하는 뜻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자학의 왕도정치 이념이 세종 대에 이르러 점차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종도 대학연의를 매우 중시했다. 그리고 인정(仁政)을 펼치는 데 군주에게 수신이 요구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주자학의 왕도정치 이념이 세종을 이어 문종 대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
단종과 세조 대에는 대학연의 경연 강의가 없었다. 예종실록에도 대학연의 경연 기사가 단 한 차례 실려 있을 뿐이다. 그런데 세조는 정관정요를 중시하여 정관정요주해를 직접 고정하여 편찬한다. 이것은 그가 왕도가 아닌 패도정치를 지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주자학의 정치 문화가 세조 대에 이르러 위축되고 있었던 것이다.
성종 대에는 대학연의에 앞서 정관정요의 진강이 먼저 이루어진다. 성종 10년이 되어서야 대학연의가 진강된다. 성종 대 대학연의 진강에서도 신하들은 군주에게 마음을 바르게 할 것을 요구한다. 성종도 그 요구를 수용한다. 이것은 군주수신(君主修身)과 격군(格君)을 중심으로 하는 주자학의 정치 문화가 성종 10년에 이르러 다시 활성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성종 11년에 정관정요가 다시 진강되고 있다. 이것은 성종 대에 주자학의 정치 문화가 완전히 정착되지는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대학연의는 다방면에 걸쳐 국정 운영의 지침서로도 활용된다. 그것은 덕(德)과 형(刑)의 분별, 군신이 예로 대우하는 방법, 군자와 소인의 변별, 인재 등용, 민생 구휼, 민간 교화와 풍속 개선, 세자 교육, 왕실 교육, 내시 교육, 왕후 선발, 이단에 대한 비판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걸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 전화번호 |
|---|
| 기사명 | 저자명 | 페이지 | 원문 | 기사목차 |
|---|
| 번호 | 발행일자 | 권호명 | 제본정보 | 자료실 | 원문 | 신청 페이지 |
|---|
도서위치안내: 정기간행물실(524호) / 서가번호: 국내08
2021년 이전 정기간행물은 온라인 신청(원문 구축 자료는 원문 이용)
우편복사 목록담기를 완료하였습니다.
*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저장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