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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비 정희왕후(자성대비, 1418~1483)는 여성으로서 조선왕조에서 최초로 수렴청정을 했던 인물이다. 그의 수렴청정은 여성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왕실의 최고 어른이라는 자격 때문에 주어진 것이었지만, 여성의 몸으로 국정 통치의 한가운데에 위치했을 뿐 아니라 큰 논란 없이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점에서 평가할만하다. 그런데 그의 통치는 일정 정도 불교의 힘에 의지하기도 했다는 점에서, 조선전기 왕실여성의 정치권력과 불교와의 관계를 짚어볼 수 있는 좋은 사례를 제공한다.

자성대비는 수렴청정 시기에 내불당의 이건, 낙산사 옛길의 폐쇄, 회암사 중수 등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시행하였다. 수렴청정을 그만 둔 이후에도 상원사에 산산(蒜山)의 제언(堤堰)을 돌려주거나 수춘군(壽春君)의 부인을 정업원의 주지로 삼는 등의 불교 우호 시책이 자성대비의 뜻에 따라 시행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대비로서 생존했던 시기에 정인사와 봉선사 등 대규모의 능침사찰 건립(중창) 불사를 주도하였고, 여기에 왕실 재정을 관리하던 내수사의 비용이 투입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에 세워진 능침사찰이 왕실의 재정을 일정 정도 이관 받아 이를 보관 및 축적하는 기능으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후 능침사찰들에 주어지는 여러 경제적 특혜는 이러한 추정을 방증하며, 자성대비를 비롯한 왕실의 여성들은 이를 통하여 정치경제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자성대비는 당대 불교계의 실력자들을 후원하고 친분을 다짐으로써 그들로부터 인정되는 권위와 명망을 획득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여성으로서 정치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을 삼고자 하였다. 이에 더하여 비구니 사원인 정업원을 보존함으로써 왕실과 사족 출신의 과부들을 후원하고 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여 고위급 여성들의 사회적 권위를 확보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실들은 자성대비로 대표되는 조선전기 왕실여성의 정치권력이 불교와 긴밀한 관련을 맺으며 이를 활용하였음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