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스트의 『깨어진 항아리』는 주로 분석극 형식이나 판사 아담이라는 인물 중심으로 분석되었다. 7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항아리에 관한 마르테 룰의 장황한 진술은 ‘그림 서술 Ekphrasis’의 측면에서 일부 수용되지만, 드라마의 흐름을 지연시키고 희극적인 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소로 지목되었다. 이 글에서는 그림의 소재로서 ‘깨어진 항아리’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마르테 룰의 진술이 서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본다. 회화에서 순진무구한 소녀의 잃어버린 순결을 상징하는 소재인 깨어진 항아리는 이 드라마에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다. 작가는 마르테의 입을 빌어 항아리의 파손된 그림 이미지뿐만 아니라, 항아리 자체의 역사도 현재화한다. 그 과정에서 1555년 황제 카를 5세가 스페인 국왕 필리페 2세에게 17개의 네덜란드 지역을 이양하는 역사적인 장면은 외부 충격으로 생긴 구멍으로 인해 그 의미가 변형된다. 스페인의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들은 우스꽝스러운 형체로 간신히 자신의 위치를 지탱하고 있다. 스페인군의 수중에서 네덜란드 민중의 손에 들어온 항아리는 간밤에 일어난 소동으로 파손되고 그 과정에서 생긴 구멍은 아담의 머리에 난 구멍과 그 이미지가 중첩된다. 이는 구질서와 신질서 사이의 시대적인 전환점을 시사하는데, 아담의 머리에 난 구멍은 관습법에 따라 임의적인 권력을 휘두르던 마을 판사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한다. 구멍으로 인해 희화화된 합스부르크 왕조 통치 체제의 한 장면은 클라이스트의 시대에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힘을 잃고 종말을 향해가는 신성로마제국과 낡은 체제에 대한 시대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이 드라마의 서문에서 언급되는 ‘역사적인 사실’과 항아리의 그림 묘사, 마지막 장면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마르테 룰의 대사는 극의 진행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부분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적으로 삽입한 부분임을 추측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