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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고 가난한 나라의 전시재상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동안 자주 울어야 했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 앞에서 무릎을 꿇고 호통을 듣다가 통곡을 한 적도 있었다. 서애는 통곡 속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미래에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대비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징비 즉 과거에 대한 반성과 미래를 위한 대비는 서애의 통곡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미래를 대비한다. 서애의 징비가 갖는 남다른 특징은 목숨을 걸었다는 점이다. 통곡 속에서 목숨을 걸고 과거에 대해 반성하고 미래를 대비했다는 데에 서애학의 본질이 있다. 서애는 목숨을 거는 결사의 징비를 통해 반주자학적인 부국강병의 길로 나아갔다. 군사학과 경제학은 서애학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하지만 서애는 자신이 주자학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주자학의 가장 깊은 차원은 양명학이나 노장과 통하고, 또한 반주자학적인 부국강병과도 통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