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결과 내 검색

동의어 포함

초록보기

본고는 1643년(5차)과 1655년(6차) 조선통신사행을 통해 이루어진 조선 문사와 일본 린케(林家) 문인의 교유를 집록한 필담창화집 󰡔한사증답일록(韓使贈答日錄)󰡕을 대상으로, 그 성립 배경과 자료적 성격, 그리고 통신사 필담창화집으로서의 위치를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먼저 유토쿠이나리 신사본, 덴리대학본, 부산시민도서관본 등 현재 확인되는 세 이본을 검토하여, 내용과 체제가 대체로 동일함을 전제하고 간행 형식이 가장 안정된 부산시민도서관본을 저본으로 삼아 전후집의 구성과 수록 양상을 정리하였다. 전집은 1643년 사행에서 하야시 라잔과 아들 가호ㆍ돗코사이, 독축관 박안기ㆍ종사관 신유 등 양측 문사들이 주고받은 시문ㆍ필담ㆍ서간을 시간 순서대로 수록하고 있으며, 후집은 1655년 사행에서 라잔의 부재 속에 가호와 손자 바이도, 히토미 유겐ㆍ사카이 하쿠겐 등 린케 문인이 정사 조형ㆍ부사 유창ㆍ종사관 남용익 및 독축관 이명빈과 나눈 교유를 중심으로 편차되어 있다. 이를 통해 󰡔한사증답일록󰡕의 성립 배경에는 개인 유학자로서의 하야시 라잔이 아니라, 막부 유관을 세습한 가문으로서의 린케 형성과 그 외교 경험의 축적이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특히 1643년에는 가호 형제가 라잔의 후계자로서 전면에 나서 필담창화를 주도하고, 1655년에는 바이도와 린케 문도가 참여함으로써 필담의 주체가 라잔 개인에서 가문과 문인 집단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필담의 내용 면에서도 성리학ㆍ경사 이해와 같은 학술적 질의에서 나당 전쟁ㆍ삼국 및 조선의 지리와 행정구역, 일본의 관제와 국토 인식 등 보다 현실적인 정보 교환으로 주제가 확대되고, 라잔의 「오화당기」와 조형ㆍ유창ㆍ남용익의 발문 및 수창에 보이듯 공적 접대를 매개로 한 문학적 네트워크가 형성ㆍ심화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한사증답일록󰡕은 1636년 이후부터 1682년 이전까지의 필담창화집 공백기 가운데 5ㆍ6차 통신사행의 실제 교유를 연속적으로 전하는 유일한 자료로서, 17세기 전반 통신사 필담의 운영 방식과 린케의 역할, 양국 문사 교류의 변화를 해명하는 핵심적 중간 고리라 할 수 있다.

本稿は、1643年(第5次)および1655年(第6次)の朝鮮通信使行において、朝鮮文士と日本ㆍ林家文人との交遊を収録した筆談唱和集󰡔韓使贈答日錄󰡕を対象とし、その成立背景ㆍ資料的性格、さらに通信使筆談唱和集としての位置付けを明らかにすることを目的とする。まず、現在確認される祐徳稲荷神社本ㆍ天理大学本ㆍ釜山市民図書館本の三種を検討し、内容と構成がほぼ同一であることを踏まえ、最も整った形態を示す釜山市民図書館本を底本として前後集の構成と収録様相を整理した。前集は、1643年の行程における林羅山とその子ㆍ鵞峰ㆍ読耕斎、ならびに独祝官朴安期ㆍ従事官申濡らの間で交わされた詩文ㆍ筆談ㆍ書簡を時系列に収め、後集は、1655年の行程において、羅山が直接応対できない状況の下、鵞峰と孫の梅洞、さらに人見竹洞ㆍ坂井伯元など林家文人が、正使趙珩ㆍ副使俞瑒ㆍ従事官南龍翼および独祝官李明彬らと交遊した記録を中心に編まれている。 これにより、󰡔韓使贈答日錄󰡕の成立背景には、一個の儒者としての林羅山ではなく、幕府有官を世襲した林家という家格の形成と、その外交的経験の蓄積があったことが確認される。1643年には鵞峰兄弟が羅山の後継者として前面に立ち筆談唱和を主導し、1655年には梅洞および林家門人が加わることで、筆談の主体が羅山個人から家と文人集団へと拡張していく過程が具体的に示される。また、筆談内容も、性理学ㆍ経史理解といった学術的問いから、羅唐戦争、三国および朝鮮の地理ㆍ行政区画、日本の官制ㆍ国土認識など、より現実的な情報交換へと広がり、さらに羅山の「五花堂記」と趙珩ㆍ俞瑒ㆍ南龍翼による跋文の酬唱に見られるように、公的接待を媒介とした文学的ネットワークの形成と深化も読み取れる。 総じて、󰡔韓使贈答日錄󰡕は、1636年以降1682年以前という、筆談唱和集が空白となる時期において、第5ㆍ6次通信使行の実際の交遊を連続的に伝える唯一の資料であり、17世紀前半の通信使筆談の運営形態、林家の役割、そして両国文士交流の構造的変化を解明する上で重要な中間資料として位置付けられ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