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 이전 이집트 민족주의의 흐름은 두 갈래로 나뉜다. 무스타파 카밀이 이끄는 민족당(히즈브 알-와타니)과 아흐마드 루트피 앗-사이드가 이끄는 민족당(히즈브 알-움마)이다. 카밀은 이집트의 영토적 민족주의를 주장했지만 오스만 제국과의 연대도 지지했다. 반면 영토 민족주의를 주장한 사이드는 범오스만주의를 거부하며, 이슬람 공동 정체성에 기반한 범오스만주의가 영토 민족주의와 모순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오스만 제국과의 연대가 이집트의 기독교 콥트교도 및 기타 아랍계 기독교인들을 배제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집트가 영토 민족주의를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1918년 오스만 제국의 패배와 1919-1920년 연합국 통치 하의 괴뢰 정권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는 이집트인들로 하여금 현실적이고 실행 가능한 정치적 대안으로서의 오스만주의를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두 번째 새로운 요인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시점에 대중 주권과 민족 자결권 개념이 대중화되었다는 점이다. 민족 자결권 개념은 이집트인들로 하여금 다민족적 충성심에 기반한 구 오스만 질서와 자결권 개념에 반하는 제국주의적 지배가 윌슨주의 원칙에 따라 설계된 전후 세계 질서 속에서 모두 구식이 될 것이라고 믿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