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1793년부터 1801년까지 청년 헤겔의 사유가 낭만주의적 “표현적 통일성” 추구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그리고 내적 한계에 대한 인식을 통해 변증법적 사유로 전환되는 계기가 무엇인지 규명한다. 청년 헤겔은 계몽주의가 초래한 인간의 객체화와 분열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헤르더의 표현주의적 인간학에 영향받아 감정과 이성, 개인과 공동체의 생동적 통일을 추구했다. 튀빙겐-베른 시기의 민중종교 기획과 고대 폴리스의 공적 종교 구상 등은 일종의 낭만주의적 기획이었으며, 실정성 비판은 화석화된 종교에 대한 낭만주의적 저항으로 읽을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시기 사랑 개념, 참다운 종교 구상 등은 계몽주의적 분리의 정신을 극복하기 위한 긍정적 장치로서, 베른 시기 자신의 철학의 정당성을 위해 소환했던 칸트의 의무의 윤리학 역시 극복되어야 할 분리의 정신으로 평가된다. 예나 시기 이후 분리를 긍정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종합을 추구하는 변증법적 사유로 나아가긴 하지만, 프랑크푸르트 시기는 유기적 통일이라는 낭만주의적 경향을 가장 깊이 각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