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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 후기 영조의 御眞 제작 배경을 고찰하고, 그 안에 담긴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개인적 의미를 다각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영조는 약 10년 주기로 자신의 어진을 제작하며, 이를 단순한 초상화로 한정하지 않고 통치 철학, 효심, 그리고 자신의 업적을 시각적으로 구현하여 후대에 전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활용하였다.

본 논문은 영조가 남긴 御製를 중심으로 영조 관련 초상화 13점의 전체적인 양상과 제작 배경을 분석하였다. 특히, 기존 연구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60세상과 64세상이 각각 생모인 숙빈 최씨와 숙종의 계비인 인원왕후를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새롭게 제시하였다. 또한 영조 어진의 주요 특징으로 다양한 복식과 기물을 활용한 점을 분석하였다. 예를 들어, 64세상의 총관과 흰 가죽신은 생모 숙빈 최씨와 계비 인원왕후에 대한 효심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영조는 다수의 小本을 제작했는데, 소본은 단순히 반신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크기가 작은 초상화로, 私親을 기리는 장소에 봉안되었다.

이렇게 영조가 자신의 초상화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것은, '繪事後素'의 철학을 어진에 적용한 것이었다. 그는 어진에 단순히 똑같은 외모를 그리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념과 업적을 후대에 전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러기에 그는 세손(정조)에게 자신의 어진을 보여주며 “이 초상을 보고 단순히 나를 그리워하지 말고, 정치와 일에서 내가 이루지 못한 바를 채워야 한다”고 말하며 회사후소의 정신을 전한 것이다.

영조에게 어진 제작은 단순히 왕의 이미지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정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 서사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었고, 자신의 어진을 통해 효와 治를 실천하는 군주의 모습을 부각하며, 어진이 후대에 大訓의 가르침으로 계승되기를 바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