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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운동 당시 충주 지역민도 만세운동에 동참했다. 3월 10 일경 충주면 간이농업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만세운동 계획이 있었고, 3 월 28~28일에는 금가면 최명희 등의 만세운동과 자금모금 논의가 있었다. 그동안 계획에 그치던 만세운동은 3월 31일~4월 1일 신니면 만세운동으로 실현되었다. 이어 4월 5일과 4월 8일 2회에 걸쳐 충주면 칠금리에서 만세운동이 다시 한번 계획되었으나 정보 누설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권태은과 최봉기는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계획하며 항일활동을지속해 갔다. 한편 천도교 충주교구장 현만협이 중심이 되어 충주와 제천의 천도교구 간부들은 ‘특별성미금’ 납부운동에 동참했다. 이는 만세운동관련 체포자와 순국자, 유가족 등을 지원하는 등을 위한 천도교의 자금확보책이었다.
충주인들은 이외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서상경은 재학 중이던 청주공립농업학교가 주도한 만세운동 계획에 참여했고, 추성렬과이교필은 음성의 한천시장 만세운동에 참여했으며, 이병철과 정태영은민족대표들과 함께 서울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충주지역의 3·1운동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청년들이주도했다. 또한 5회 모두 장날을 이용한 장시투쟁으로 계획되거나 전개되었다. 이 중에서도 충주면 내의 기독교인 학생들 간에 연락을 하며 만세운동 계획이 이어지고 있었던 점은 주목되는 바이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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