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국회도서관 홈으로 정보검색 소장정보 검색

결과 내 검색

동의어 포함

초록보기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때 일본군도 여론전을 벌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역시 여론전을 벌였다. 특히 조직된 지 얼마 안 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더욱더 절박하게 여론전을 벌였는데, 그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와 역할을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이해된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기관지 『독립신문』을 이용해 여론전을 벌였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발표한 청산리 대첩 관련 발표 3건은단순히 청산리 대첩의 사실만을 전하는 문건이 아니라 아군의 조직력과전투력을 과장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홍보하는 문건이기도 했다. 예컨대 봉오동 전투 때에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대한북로도독부’라는통합 지휘 체계를 내세워 단일 지휘권 아래 수행된 연합 작전임을 홍보했으며 청산리 대첩 때는 ‘북로사령부’라는 통합 지휘 체계를 내세워 단일 지휘권 아래 수행된 연합 작전임을 홍보했다.

그러나 『홍범도일지』 등의 교차 사료를 통해 볼 때, 당시 대한북로도독부와 북로사령부는 계획상의 조직이었을 뿐 실질적인 통합 지휘는 부재했으며, 각 독립군 부대는 독자적인 판단하에 전투를 수행했음이 드러난다. 즉,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표는 열세인 독립군의 조직력과 전과를과시하여 항전 의지를 고취하기 위한 전략적 여론전의 성격이 짙다.

따라서 청산리 대첩에 관한 대한민국임시정부 발표 문건을 사료로 활용할 때는 계획과 홍보는 계획과 홍보대로 구별하고 사실은 사실대로 구청산리 대첩에 관련된 여론전과 기록의 실상 107 별하여 엄정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 사료 비판을 통해 사실과 홍보를구별하고 그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역사학도의 숙명이자 사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서일 총재 보고, 북만주 통신원 이즁실 보고, 경전 장교 김훈 대담 등북로군정서 측 보고 문건들 역시 엄정하게 사료 비판할 필요가 있다 서일 총재 보고, 이중실 통신원 보고, 김훈 장교 대담 등은 청산리 대첩에참전한 북로군정서의 보고에 근거했다는 점에서 북로군정서의 활약에대한 증거능력은 신뢰할 수 있지만 홍범도 부대 등 다른 독립군 부대의활약에 대해서는 증거능력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청산리 대첩에 관한 대한민국임시정부 발표 문건 3건과북로군정서의 서일 총재 보고, 이중실 통신원 보고, 김훈 장교 대담 등은『홍범도일지』 등 참전 당사자들의 자료와 상호 간 비교, 검토하여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엄정한 사료 비판만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청산리 대첩의 실제 관계와 의미 나아가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군 부대와 각각의 전투 실상 등이 해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료 비판을통해 사실은 사실대로 밝혀내고 계획과 홍보는 계획과 홍보대로 밝혀내는 것은 역사학도의 숙명이자 사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호기사

권호기사 목록 테이블로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기사목차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기사명 저자명 페이지 원문 목차
충주지역 3·1운동 전개과정과 주도층 = The development of the March First Independence Movement in the Chungju region and its leading figures 이양희 p. 5-35
이청천의 만주·러시아지역 항일무장투쟁 (1919~1922) = Lee Chung-cheon’s anti-Japanese armed struggle in Manchuria and Russia (1919~1922) 김민호 p. 37-76
청산리 대첩에 관련된 여론전과 기록의 실상 = Propaganda warfare and the reality of records regarding the Battle of Cheongsanri : a critical review of the Korean Provisional Government’s Statements and the Northern Military Administration Office’s reports : 대한민국임시정부 발표와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보고의 비판적 검토 신명호 p. 77-109
1922년 원동민족혁명단체대표회 한인 참가자 분석 = An analysis of Korean participants in the 1922 Congress of the Communist and Revolutionary Organizations of the Far East : focusing on delegates selected from China and Korea : 중국과 국내에서 선정된 대표들을 중심으로 윤상원 p. 111-148
1930년대 초반 이재유그룹 학생운동 성원의 사회주의운동 입문 경로 = Pathways into socialist activism among student members of the Lee Jae-yu Group in the early 1930s 김지수 p. 149-186
영화 「조선의용대」 제작을 통해 본 조선의용대의 대외선전활동 = The Korean Volunteer Corps’ external propaganda campaign using images and the film “Korean Volunteer Corps” 조은경 p. 187-223
신채호와 신규식의 문학적 관련성 연구 = A study of the literature relationship beween Shin Chae-ho and Shin Gyu-sik 김주현 p. 225-258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군기보호법(軍機保護法) 개정과 식민지 조선 통제 = Revision of the Military Secret Protection Act and control of colonial Korea under the wartime general mobilization system 정혜인 p. 259-299
경성제국대학 고지요양연구소의 설치와 전시 학술 동원 = Establishment of the Keijo Imperial University Alpine Sanatorium Research Institute and wartime academic mobilization in colonial medicine 이희재 p. 301-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