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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호암산성은 금천구 시흥동 호암산의 남쪽 능선에 조성된 산성이다. 호암산성은 1991년에 ‘한우물 및 주변성지’라는 명칭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사적 명칭이 서울 호암산성으로 변경되었다. 발굴조사 성과를 통해 보면 호암산성은 나당전쟁~통일신라 초기에 축성된 이후 대몽항쟁기 이전 고려 후기까지 활용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호암산성 석수상은 산성 내의 대형 저주지인 한우물에서 약 70m 떨어진 곳에 있는데, 석수상은 호암산성 북쪽 지역에서 지대가 가장 높은 곳에 조성되었다.
호암산성 내의 석수상은 그동안 해태상이나 石狗像 등으로 불렸다. 그 이유는 석수상의 외형이 큰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석수조각의 전개 양상과 석수상의 현상을 살펴보면 호암산성 내의 석수상은 해태상이나 석구상으로 보기 어렵다. 본문에서는 호암산성 내 석수상의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고 이를 우리나라 석수상의 전개 과정과 비교하였다.
본문에서는 호암산성 석수상이 해치나 석구와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광화문 해치상과 낙안읍성 석구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광화문 해치상은 사자상을 기본으로 조성된 석수이기에 목에 갈기 표현이 없는 호암산성 석수상을 해치와 연결할 수는 없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석구상인 낙안읍성 석구상과도 비교 분석을 진행하였으나 호암산성 석수상과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호암산성 석수상은 엉덩이를 땅에 대고 앞다리를 바로 세운 蹲像이다. 우리나라 석수상에서 준상의 자세를 하고있는 석수상은 대부분 사자상과 석호상이다. 호암산성 석수상은 갈기가 없는 점과 끝이 말려 있는 꼬리를 통해 석호상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호암산성 석수상의 구체적인 조성시기를 파악하기 위해 조선왕릉 석호상과 비교연구를 진행하였으며 그 결과 호암산성 석수상은 15세기 중・후반경에 제작된 석호상임을 알 수 있었다.
호암산성 석수상의 조성배경으로는 조선 초기 대표적인 국가적 기우법인 沈虎頭法과 일정한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였다. 호암산성 석수상을 조성한 사람들은 금천 백사동 일대를 사패지로 받은 순흥안씨의 세력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금천체육공원 내 석양을 분석하여 논의하였다.*표시는 필수 입력사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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