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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군은 6․25전쟁 이전에 전투력을 갖추기 위해 1950년 4월 까지 지상에서 실시할 수 있는 이론교육과 전투준비를 완료했으며, 전력 을 급속히 증강하기 위해 교도연대에 가장 많은 병력을 배치했다. 북한 공군의 유일한 부대였던 비행사단의 교도연대 비행학생들은 1950년 1~2 월에 집중적으로 실시된 야크(YAK) 기종의 동승비행훈련을 통해 단독비 행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추격기연대와 습격기연대는 1949년부터 본격 적으로 비행훈련을 시작했으며, 1950년에 들어서 개전에 대비해 비행훈 련시간을 1949년도의 두 배로 늘렸다.

비행사단 습격기연대는 1950년 4월부터 전면전에 대비해 일류신(IL) 기종 에 대한 비행훈련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그러나 습격기연대는 1950년까지 대지사격훈련과 강하폭격훈련만 실시했고 공중전에 필요한 비행훈 련을 실시하지 않았다. 추격기연대의 비행사들은 1950년 2월까지 실지비 행훈련을 통해 단독비행능력과 2대 대형비행능력을 갖추게 되었지만, 모 두 5월에 처음으로 대지사격훈련과 공중사격훈련을 받았다.

북한 공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비행사이 1950년 3~4월에 처음으로 공격 전에 필요한 집단비행기술․사격기술․폭격기술 훈련과 합동작전에 대 한 비행훈련을 받았다는 점이다. 결국 북한 공군은 전면전에 필수적인 공 격기술, 공중전의 전투비행기술, 지상군과의 합동작전능력을 숙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에 투입되었다. 이것이 바로 북한 공군이 개전 초기에 궤멸된 내부적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