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들레르 탄생 200주년과 플레이야드 총서 신판 출간이라는 연구 환경의 변화를 계기로, 본 연구는 보들레르의 시 세계에 내재된 종교성을 재검토하고 특히 장세니즘적 사유 구조를 중심으로 이를 분석한다. 악의 꽃에는 다수의 가톨릭적 어휘와 이미지가 나타나지만, 보들레르의 종교성은 전통적 신앙과는 다른 변형된 양상을 보인다. 보들레르는 유년기와 청소년기 동안 형성된 장세니스트적인 환경과 더불어 블레즈 파스칼의 팡세 및 생트-뵈브의 저작을 통해 장세니즘 사상을 수용하며, 이를 ‘원죄–악의 미학–구원 불가능성’의 구조로 재구성한다. 특히 파스칼의 형이상학적 ‘abîme’은 보들레르에게서 내면적⋅존재론적 ‘gouffre’로 전환되며, 이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 죄성인 ‘권태’와 ‘오만’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심연 의식 속에서 기존의 구원자로서의 예수는 ‘시인-예수’로 변형되고, 구원은 초월적 은총이 아니라 고통과 심연을 언어화하는 창작 행위를 통해 성취된다. 결국 보들레르에게 종교란 교리적 체계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죄와 타락을 끝까지 응시하고 변환하는 시적 사유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