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그가 일생 동안 소를 본 사실은 목동이나 도살장 사람이나 소시장의 장꾼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송도원에 나가서 하루 내내 어떤 소만을 관찰하기도 하고 여러 마리의 소를 관찰하기도 했다. …… 사물은 그것을 객체로 대하는 동안 곧 혐오감이 생기거나 싫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럴 경우 사물과 사물 관계자는 절연되어 있다. 그 절연을 어떤 인식이나 사랑, 지혜를 통해서 극복하고 사물을 자기화하는 것이 가장 깊은 철학이며 가장 높은 문학이고 예술인 것이다. 중섭은 그런 일을 해낸 것이다.
그가 사물 자체가 되거나 사물이 그의 인식 자장(磁場)에 완전히 들러붙거나 해야 그의 관찰은 깊은 피로감의 행복으로서 휴지부를 찍는 것이다. "송도원 부근의 농부들이 날마다 나타나서 하루 해가 저물도록 소를 보고 있던 중섭을 처음에는 소도둑인 줄 알고 고발한 일도 있었대요." "어떤 농부는 그를 미친놈이라고 쫓기도 하고, 아마도 소도둑이나 소백정이 미쳐서 소 옆에만 나와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대요." - 79,80쪽 중에서
그가 그리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거나 그의 아내거나 또는 소나 개, 닭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먼저 사랑함으로써 그릴 수 있었다. 적어도 중섭에게 예술은 하나의 끊임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예술의 주제가 되는 사물을 그런 사랑으로 반영구적으로 또는 영구적 관계로 유지하지 않으면 그의 미는 탄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소의 애인이며 학과 사슴의 애인이며 닭의 애인이며 어린아이들과 생선의 애인이었다. 만상(萬象)의 애인으로서 그는 동양의 신선이 될 수 있었다. - 221쪽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