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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나오는 한국사 인물이야기 : 인물을 알아야 역사를 안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1157671 920.051 ㅇ554ㄱ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1157672 920.051 ㅇ554ㄱ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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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평가

박지원은 생전에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높은 식견과 뛰어난 문학성을 높이 평가한 사람들이 있던 반면 강한 기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성품 때문에 오해와 비난도 많이 받았다.

그의 문집이 처음으로 간행된 것은 사후 100년이 지난 1900년이었다. 손자 박규수가 우의정을 지내면서도 발간하지 못할 만큼 그의 사상은 급진적이었고 따라서 위험했다.

명나라에 의한 의리론과 청나라에 대한 북벌론이 지배적인 시대 상황에서 그는 청나라의 기술 문명을 과감하게 수용하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농업 중심의 사회에서 상업과 대외무역을 중시하며 새로운 기술 도입을 외쳤다. 또한 당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던 대지주의 토지 집중화 현상을 막기 위해 일종의 토지 소유 상한제인 한전법을 주장했다.

그가 일궈놓은 북학사상은 19세기 김정희에 의해 학문적으로 성숙되고, 19세기 후반 개화기에 동도서기론 형성의 사성적 바탕이 되었다.

구한말 문장가 김윤식은 "그의 문장은 천마가 하늘을 나는 것 같아 굴레를 씌우지 않았건만 자연스럽게 법도에 다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그의 문장은 문장 가운데 으뜸이라 할 만하며, 후생이 배워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극찬했다. - 본문 371쪽